이재현 CJ 회장의 인사 장고…'신상필벌'과 '적재적소'의 간극
이재현 CJ 회장의 인사 장고…'신상필벌'과 '적재적소'의 간극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4.02.0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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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여 만에 해 넘긴 그룹 정기임원인사…핵심 계열사 부진 '위기감'
글로벌 초격차 '중기계획' 대전제, 분위기 쇄신보단 자리 이동 가능성
이재현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지난 1월 10일 CJ올리브영 본사에서 임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출처=CJ그룹]
이재현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지난 1월 10일 CJ올리브영 본사에서 임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출처=CJ그룹]

CJ그룹 임원인사가 평소보다 늦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룹의 성과주의에 따라 ‘신상필벌(信賞必罰)’ 인사가 유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의 장고(長考)를 감안할 때 당장의 성과 여부로 판단하기보단 그룹 중기비전에 대한 이해와 추진력 등 전반을 살피며 ‘적재적소(適材適所)’를 위한 인사 배치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창립 70주년 불구 그룹 실적은 악화
5일 재계에 따르면, CJ그룹의 정기 임원인사가 2017년 이후 7년여 만에 해를 넘겼다. CJ그룹은 통상적으로 매년 10~12월에 임원인사를 단행해 왔다. 직전인 ‘2023 정기임원인사’는 2022년 10월에 발표됐다.

임원인사가 늦어진 배경으로는 그룹의 실적 부진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은 CJ그룹 창립 70주년으로 의미가 깊었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못했다. 특히 수익성 등 질적성장 지표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CJ그룹의 2023년 1~3분기 영업이익 누계는 1조4657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20%가량 줄었다. 순이익은 같은 기간 46.0% 급감한 4034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률(OPM)도 평균 6.03%에서 4.73%로 낮아졌다.

이는 CJ제일제당, CJ ENM 등 핵심 계열사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 크다. 그룹 모태이자 얼굴인 제일제당은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며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지난해 3분기 누계 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대한통운 제외)은 각각 13조5048억원, 6615억원이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액은 약 3.9%, 영업이익은 42.2% 감소했다. ENM은 같은 기간 매출이 6.6%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바뀌었다. 올리브영, 대한통운, 프레시웨이, 푸드빌 등의 계열사들이 상대적으로 실적 선방을 했음에도 비중이 큰 두 핵심 계열사의 부진 여파가 컸다. 

◇제일제당 대신 올리브영·대한통운 찾은 오너
이런 상황에서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최근 신년사에서 “그룹은 사상 초유의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며 “지금의 위기는 우리의 현실 안주와 자만심 등 내부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더 심각하다”고 지적하며 ‘경고장’을 날렸다. 

또한 오너인 이재현 회장은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올리브영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찾았다. 이 회장이 계열사 현장을 찾은 건 2019년 제일제당 식품·바이오 연구소인 ‘CJ블로썸파크’ 이후 5년여 만이다. 이 회장은 올리브영 사옥에서 임직원들에게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에 가장 잘 맞는 사업을 하고 있고 이제는 내세울만한 체력과 여건을 갖춰 그룹의 어엿한 주력사업으로 성장했다”고 치켜세웠다. 또 대한통운 사옥에서는 “사업구조와 조직문화가 질적으로 많이 개선됐다”며 “국가 물류산업을 선도한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져달라”며 격려했다. 

그룹 핵심인 제일제당과 ENM을 ‘패싱’하고 올리브영과 대한통운을 ‘응원’하면서 그룹 대내외적으로 계열사 간 위상에 희비가 엇갈렸다. 때문에 CJ그룹의 이번 임원인사는 실적 부진 계열사를 중심으로 신상필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룹 '대변혁' 추진력 여부 판가름
다만 임원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또 다른 배경으로 그룹의 중기비전과 연관 깊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인사가 신상필벌이 주가 됐다면 여느 때처럼 최근의 지표를 기준으로 성과 달성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핵심인 제일제당과 ENM은 작년을 제외하고는 성장을 지속해왔다. 2022년에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린 바 있다. 단순히 최근의 지표로 계열사 수장들의 경영능력을 판단하기엔 그 셈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비단 실적 등 목표 성과뿐만 아니라 그룹의 중장기 비전에 대한 이해와 추진력을 두루 살펴보면서 최고 인사결정권자의 고민이 깊어진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2021년 11월 당시 이재현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2023 중기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제공=CJ그룹]
2021년 11월 당시 이재현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2023 중기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제공=CJ그룹]

CJ그룹은 2021년 11월 ‘2021~2023 중기비전’에 이어 이듬해인 2022년 말에는 ‘2023~2025 중기전략’을 내놓았다. 특히 이재현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밝힌 2023 중기비전에서는 그룹 전반에 ‘대변혁’이 시급하다고 보고 제3의 도약을 향한 4대 성장엔진 △문화(Culture) △플랫폼(Platform) △웰니스(Wellness)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제시됐다. BT(생명공학)와 IT(정보통신) 중심의 신성장동력 발굴에 초점을 맞췄다. 3년 내 매출 성장의 70%가 미래성장엔진에서 창출하는 것을 그룹의 목표로 설정했다.

또한 이재현 회장은 이듬해인 2022년 5월에는 ‘2026년까지 20조원 투자’ 약속을 했다. 식품·콘텐츠 등 컬처 사업에 12조, 물류·커머스를 비롯한 플랫폼 7조원, 웰니스·지속가능성 사업에 1조원 등이 골자다. 이어 그해 10월 임원인사 단행 직후 그룹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지주사 경영진과 미팅을 가진 자리에서 “4대 미래성장엔진이 본격 가동됐다고 보기엔 이르다”며 “2023~2025년은 (CJ가) 글로벌 메이저 플레이어로 가느냐, 국내에 안주해 쇠퇴하느냐의 중차대한 갈림길”이라고 말했다. 

손경식 회장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2426 중기계획’ 추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손 회장은 “온리원(ONLYONE·초격차 1등) 정신을 기반으로 2426 중기계획인 퀀텀점프 플랜을 새롭게 도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며 ‘최고 인재의 양성과 적재적소 배치’를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사가 평소보다 미뤄지는 건 실적 외에도 고려할 점들이 많다는 의미”라며 “분위기 쇄신 차원의 흔히 말하는 ‘물갈이’ 교체보다는 미래 경쟁력과 수장들의 특·장점을 감안한 자리 이동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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