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의 SWOT] 동서식품, 무색해진 '커피왕국'
[박성은의 SWOT] 동서식품, 무색해진 '커피왕국'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3.08.08 0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맥심·카누 스테디셀러 보유…'카누 바리스타' 홈카페 사업 다각화
연매출 스타벅스가 추월…'컴백' 김석수 회장, 자존심 회복 급선무
맥심 커피믹스 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맥심 커피믹스 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생활 속에 향기를 드리는 기업.’ 동서식품 홈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이다. 커피를 본업으로 맥심, 카누 등 대형 스테디셀러를 키워내며 외형과 내실을 다져왔다. 하지만 주력인 믹스커피 등의 수요 감소로 10여 년간 성장이 정체돼 ‘국내 최대 커피기업’, ‘커피 왕국’이란 말이 다소 무색해졌다. 올 들어 오너가 경영에 복귀하고 10년 만에 수장을 바꾸는 결단에 캡슐커피 신사업으로 변화를 꾀했다. 신사업 성공 여부에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강점: 맥심·카누…커피 '넘사벽'
동서식품은 커피를 앞세워 대형 식품사로 성장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조제커피 제조사 점유율(2022년 상반기 소매점 기준)에서 동서는 87.9%로 2위 남양유업(7.8%)보다 11배 이상 격차를 보일 만큼 압도적이다. 브랜드 점유율은 동서식품의 믹스커피 ‘맥심’이 82.0%로 1위, 인스턴트 원두커피 ‘카누’가 4.0%로 3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브랜드 ‘맥스웰하우스’는 1.9%로 5위다. 상위 5개 브랜드 중 3개가 동서식품이다. 국내 커피시장에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너무나 우월한 위치)’이다.

대표작 맥심은 믹스커피의 대명사로서 동서식품이 1976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발명품’이다. 작고 기다란 봉지 안에 커피와 설탕, 프림의 ‘황금비율’로 전 국민에게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다. 출시 50여년에 가깝지만 아직도 가정집은 물론 행사장과 회사 탕비실 필수품 리스트에 맥심이 있다. 2011년에 선보인 카누는 ‘내 손 안에 작은 카페’라는 슬로건처럼 원두커피의 풍미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맥심에 이어 또 다른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동서식품은 맥심과 카누가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 성장해왔다. 2003년 연매출 6947억원에서 2007년 1조129억원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섰고 카누가 출시됐던 2011년 1조500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조6152억원으로 20년 새 매출액은 두 배를 웃돌았다. 커피로 ‘웃은’ 기업이 바로 동서식품이다.     

◇약점: 캐시카우 or 치중된 포트폴리오
맥심, 카누와 RTD(즉석에서 마시는) 커피 ‘티오피(T.O.P)’ 등 조제커피는 동서식품의 확실한 ‘캐시카우’다. 단, 전체 매출의 80% 이상으로 의존도가 높다. 조제커피 소비와 시장 상황에 따라 회사 성장이 좌우되는 구조다. 

aT에 따르면, 국내 조제커피 시장규모는 2018년 8512억원에서 2021년 7096억원으로 3년 새 16.6% 줄었다. 인스턴트커피 시장규모는 같은 기간 2027억원에서 2201억원으로 7.9% 성장했다. 다만 국내 전체 커피류 시장에서 조제 및 인스턴트커피 비중(합산)은 2018년 각각 40.9%에서 2021년 29.9%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커피류 시장규모가 연평균 6.6% 커진 것과 대비된다. 동서식품이 10여 년간 연매출 1조5000억원대로 정체된 것과 연관이 깊다. 단조로운 포트폴리오가 동서식품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막는 셈이다.  

어느 마트에서 운영 중인 카누 바리스타 홍보 매대. [사진=박성은 기자]
어느 마트에서 운영 중인 카누 바리스타 홍보 매대. [사진=박성은 기자]

동서식품의 지난해 영업이익(연결기준)은 1601억원으로 전년 2113억원보다 24.2% 감소했다. 1000억대 영업이익은 2012년 1796억원 이후 10년 만이다. 동서식품은 올 2월 ‘카누 바리스타’ 캡슐커피와 커피머신을 선보이며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일각에선 이와 관련한 판관비 등으로 수익이 더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작년에는 원재료값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높아져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카누 바리스타 판촉은 꼭 필요한 활동으로 경영실적에 맞춰 효율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회: 경영진 변화, '캡슐커피' 신사업
동서식품은 신사업과 함께 경영진에 큰 변화를 줬다. 일단 지난 3월 김광수 마케팅 총괄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10년간 동서식품을 이끌었던 연구원 출신의 이광복 대표가 물러나고 ‘마케팅통(通)’이 새 수장에 자리했다. 커피를 비롯한 기호식품은 워낙 경쟁이 심하면서도 맛·품질에서 크게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소비 트렌드와 취향을 제대로 짚을 수 있는 마케팅력(力)이 중요하다. 동서 커피사업 전반의 흐름을 잘 알면서 마케팅을 책임진 김광수 대표를 카누 바리스타 신사업을 제대로 띄울 수 있는 적임자로 본 것으로 분석된다. 

동서식품 김석수 회장(좌)과 김광수 대표(우). [사진=동서식품]
동서식품 김석수 회장(좌)과 김광수 대표(우). [사진=동서식품]

동서그룹 오너 2세 김석수 감사가 5년 만에 동서식품 회장으로 ‘컴백’한 점도 흥미롭다. 김 회장은 그룹 창업주 김재명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2002년 동서식품 기획마케팅 부사장을 거쳐 2008년 회장 직에 오른 후 2018년 물러나 감사를 맡아 왔다. 또 오너 3세 김종희 동서 부사장은 동서식품 감사도 겸했다. 김 부사장은 그룹 첫째 김상헌 전 동서 고문의 아들이다. 성장 기로에 선 만큼 오너 일가가 회사 경영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며 사업 전반을 꼼꼼히 챙기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동서식품은 김석수-김광수 체제에서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과 연계해 신사업 카누 바리스타 캡슐커피·커피머신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전개 중이다. 대형마트·네이버 쇼핑 등의 채널에서는 20~30%대 큰 폭의 할인행사를 수시로 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국내 캡슐커피 시장규모(추정치)는 2018년 1000억원을 넘은 이후 지난해 4000억원대로 성장을 지속했다. 집에서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즐기는 비중(aT 기준)은 2014년 35.0%에서 지난해 57.7%로 22.7%포인트(p) 늘었다.

◇위협: 예전 같지 않은 믹스커피, 후발주자의 한계
국내 카페 문화 확산과 함께 다양한 취향의 커피 전문점들이 생기면서 과거 믹스커피 일변도였던 커피시장은 빠르게 바뀐 상황이다. aT에 따르면, 집에서 마시는 커피 비중(중복 응답)에서 믹스커피는 2014년 73.7%에서 지난해 49.7%로, 인스턴트커피는 같은 기간 43.6%에서 29.8%로 낮아졌다. aT 측은 “믹스커피는 건강,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설탕 등 첨가물에 대한 염려가 있다”며 “인스턴트커피는 원두커피보다 맛과 향미가 떨어진다는 인식으로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서식품 입장에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동서식품이 홈카페족을 겨냥한 카누 바리스타를 적극 띄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론칭 반 년 가량 됐으나 기대만큼의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캡슐커피 시장은 70%대의 네슬레 ‘네스프레소’라는 막강한 사업자가 있다. 이어 ‘일리’,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라바짜’ 등 글로벌 커피 브랜드 중심으로 장악됐다.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후발주자라는 점이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캡슐커피 사업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만 외부에 숫자 공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관련 신제품은 지속적으로 발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서식품은 국내 최대 커피기업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하지만 이마트 계열의 SCK컴퍼니가 운영하는 스타벅스 코리아가 2021년 연매출 2조원을 넘어서면서 외형 면에서 스타벅스를 1위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서식품이 오너까지 복귀한 새로운 경영체제에서 카누 바리스타로 대표되는 신사업으로 자존심을 되찾을지 혹은 정체가 계속될지 업계 이목이 쏠린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

parkse@shinailbo.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