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롯데의 대담한 승부수…'마트의 위기' 넘는다
[르포] 롯데의 대담한 승부수…'마트의 위기' 넘는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4.01.02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롯데마트 은평점, 7년여만의 특화 매장 '그랑 그로서리' 리뉴얼
공간 90% 먹거리 채운 과감한 시도…44m '롱 델리 로드' 눈길
강성현 대표 "오프라인 역량 총집약, No.1 그로서리 마켓 도약"
7년여 만에 먹거리 특화 매장 '그랑 그로서리'로 리뉴얼한 롯데마트 은평점. 소비자들이 핵심인 44m의 롱 델리 로드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박성은 기자]
7년여 만에 먹거리 특화 매장 '그랑 그로서리'로 리뉴얼한 롯데마트 은평점. 소비자들이 핵심인 44m의 롱 델리 로드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박성은 기자]

롯데마트가 공간 혁신을 위해 ‘대담한 시도’를 했다. 기존 은평점 공간의 90%를 다양한 먹거리로 채우는 ‘그랑 그로서리(Grand Grocery)’ 매장으로 탈바꿈시키며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매장 콘셉트는 ‘매일 매일의 먹거리 고민 해결사’다. 온라인 채널보다 우위에 있는 먹거리 콘텐츠를 대폭 강화한 전략이다. 온라인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유통시장에서 마트가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한 롯데마트가 이번 리뉴얼을 통해 경쟁사인 업계 1위 이마트 은평점과의 새로운 맞대결을 펼치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매일 뭐 먹지' 고민 해결사 자처
연말 모임과 홈파티 등으로 분주했던 지난주 금요일(12월 29일) 오후 롯데마트 그랑 그로서리 은평 매장을 찾았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주말이 낀 연말 저녁 먹거리를 마련하고자 찾는 소비자들이 꽤 많았다. 이 곳은 전날인 12월 28일 그랑 그로서리 매장으로 리뉴얼 오픈했다. 매장의 90%를 먹거리로 채운 ‘국내 최대 규모의 델리 식료품 제안 매장’이다. 롯데마트가 그간 내놓은 미래형 매장 ‘제타플렉스’, 주류에 집중한 ‘보틀벙커’ 등에 이은 또 하나의 특화 공간이다.  

롯데마트 측은 그랑 그로서리를 오픈하면서 “마트와 슈퍼로 이분화 됐던 기존 포맷을 깨고 ‘매일 뭐 먹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먹거리 시장이자 오프라인 데일리 그로서리 매장의 새로운 모델”이라며 야심차게 소개했다. 

매장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스마트팜에서 샐러드가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요즘의 마트와 별 다를 게 없다. 핵심은 매장 입구부터 펼쳐진 직선길이 총 44m의 ‘롱 델리 로드’다. 로드 왼쪽 편에는 자체 베이커리 브랜드 ‘풍미소’와 즉석조리식품 코너 ‘요리하다 키친’, 생선회·초밥 중심의 ‘요리하다 스시’, 이색 비비큐 상품을 한데 모은 ‘요리하다 그릴’이 배치됐다. 로드 오른쪽에는 채소·과일 등 다양한 신선 먹거리 코너와 갖가지 가정간편식(HMR)이 총집결한 ‘데일리 밀 솔루션’이 자리했다. 

마트에 가면 자고로 카트를 이리저리 끌면서 진열된 상품들을 보고 듣고 맛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는 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매력 요소다. 이것저것 고르다보면 어느새 카트에 한가득 담은 상품들을 결제하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어쩌면 ‘탕진잼’, ‘플렉스’의 시초가 마트 장보기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이 같은 모습은 익숙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쳐 쿠팡, 네이버쇼핑 등 이커머스를 통해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더라도 생필품을 간편하고 빠르게 배송 받으면서 소비자들의 온라인 채널 의존도는 무척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유통시장에서 온라인 채널 매출액은 2013년 38조4978억원에서 2022년 209조8790억원으로 10여 년간 5배 이상 급성장했다. 반면에 마트는 같은 기간 39조1000억원에서 34조7739억원으로 하락세가 지속됐다. ‘마트의 위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뷔페처럼 차린 중식, 초밥 주문은 오마카세 
롯데마트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그랑 그로서리는 마트의 최대 강점인 ‘먹거리’에 가장 특화한 공간이다. 소비자들이 마트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환기시킨 것이다. 

롱 델리 로드를 살펴보면 요리하다 키친의 경우 아메리칸 차이니즈(미국식 중식당) 콘셉트의 17종의 즉석조리식품을 뷔페식으로 차려놨다. 사천식 마파두부, 마라새우, 난자완스, 쿵파오치킨 등 개성 넘치는 메뉴들을 취향에 따라 2구(스몰) 또는 4구(라지) 도시락을 활용해 담아가면 된다. 2구는 5990원부터, 4구는 1만900원부터 가격을 책정해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다. 

요리하다 스시는 50여종의 초밥과 여러 종류의 생선회들이 준비됐다. 마트에서는 찾기 힘든 고등어초절임 초밥은 물론 ‘카이센동(일본식 덮밥)’, ‘호소마키(김초밥)’ 등 종류가 무척 다양해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코너는 오마카세(맡김차림) ‘라이브 스시(Live Sushi)’를 표방한다. 키오스크를 통해 횟감을 고르고 원하는 부위와 중량을 선택하면 셰프가 고객이 주문한 대로 회를 만들어 포장해준다. 

롱 델리 로드의 요리하다 키친 코너. [사진=박성은 기자]
롱 델리 로드의 요리하다 키친 코너. [사진=박성은 기자]
롱 델리 로드의 요리하다 스시 코너. [사진=박성은 기자]
롱 델리 로드의 요리하다 스시 코너. [사진=박성은 기자]
데일리 밀 솔루션의 도시곳간 반찬숍. [사진=박성은 기자]
데일리 밀 솔루션의 도시곳간 반찬숍. [사진=박성은 기자]
Tasty RAMYUN 코너. [사진=박성은 기자]
Tasty RAMYUN 코너. [사진=박성은 기자]

요리하다 그릴은 시즈닝 스테이크와 마리네이드 생선 등을 먹기 좋게 준비했다. ‘비어슁켄’, ‘메르게즈 롱 소시지’ 등 유럽식 이색 소시지도 눈에 띄었다. 집에서는 물론 근교 캠핑을 떠나기 전 마트에 잠깐 들러서 구매하기 좋은 공간이다.

마트에서 만난 30대 소비자 A씨는 “새로 오픈했다고 해서 와봤는데 볼만한 게 꽤 많아 재미있다”며 “마침 저녁에 가족 홈파티가 있는데 애들이 좋아하는 델리식품부터 회, 초밥, 스테이크 등 고를만한 메뉴들이 많아 따로 음식을 차릴 필요가 없겠다”며 만족했다.

또 다른 코너인 데일리 밀 솔루션은 오프라인 프리미엄 반찬 편집샵 ‘도시곳간’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한 공간으로 250여종의 반찬 레시피를 제안한다. 1인가구는 물론 반찬거리가 늘 고민인 주부들에게 안성맞춤이다.      

‘Tasty RAMYUN’ 코너는 국내외 유명 라면들이 집결한 공간이다. 농심, 오뚜기, 삼양 등 국내 대형 라면 메이커들은 물론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인기라면 제품들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라면 진열대 옆에는 한동안 품귀를 빚은 ‘농심 먹태깡’과 ‘롯데웰푸드 오잉 노가리칩’이 한가득 있었다. 이 외 ‘Better For You’ 코너는 비건과 저당, 유기농, 저칼로리, 프로틴, 글루텐프리, 대체유, 대체육까지 다양한 건강식들을 진열했다. 

◇이마트와 스타필드 사이 차별화 '노림수'
그랑 그로서리로 리뉴얼되기 전 롯데마트 은평점은 지난 2016년 11월 복합쇼핑몰 ‘롯데몰 은평’이 들어서면서 입점했다. 롯데마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3대 대형마트 브랜드로는 6호선 응암역 부근의 이마트 은평점이 유일했다. 3호선 불광역과 맞닿은 이랜드리테일의 NC백화점·킴스클럽이 운영되긴 하나 규모와 취급 상품 수로는 3대 대형마트와 ‘급’은 맞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2001년부터 운영 중인 이마트 은평점은 ‘전국 1등 점포’라는 타이틀을 꾸준히 유지하는 최상위 마트다. 서울의 대표 ‘서민 동네’ 은평구에 위치한 대형마트라는 점과 함께 방송국들이 밀집한 상암DMC가 인근에 위치해 물가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송에 곧잘 노출되는 매장이기도 하다.

롯데마트 그랑 그로서리 은평 입구. [사진=박성은 기자]
롯데마트 그랑 그로서리 은평 입구. [사진=박성은 기자]

이마트 은평점이 서민들이 즐겨 찾는 대표 마트라면 롯데마트 은평점은 같은 은평구에 있어도 결이 약간 다르다. 3호선 구파발역과 연결된 롯데마트 은평점은 고층의 브랜드 아파트들이 밀집한 은평뉴타운에 위치했다. 이 지역은 소득수준이 높은 중산층 거주 비중이 높은 상권이다. 이마트 은평점이 응암, 연신내, 불광 등 전통상권을, 롯데마트 은평점은 구파발 등 신흥상권을 주로 커버해왔다. 

다만 롯데마트 은평점에서 자가용 기준 10분 거리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이 운영 중이다. 스타필드 고양의 운영 주체는 이마트다. 

롯데마트 은평점은 그간 이마트 은평점과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 사이에서 포지션이 애매하단 시각이 컸다. 결국 이번 리뉴얼을 통해 집객효과가 크면서 오프라인 마트의 최대 강점인 먹거리 콘텐츠에 과감히 투자하며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는 “그랑 그로서리는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롯데마트의 그로서리 역량을 총집약한 공간”이라며 “차별화된 먹거리 쇼핑 경험을 통해 고객들을 오프라인으로 이끌고 No.1 그로서리 마켓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parkse@shinailbo.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