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겨울 냉이에서 길을 찾다
[금요칼럼] 겨울 냉이에서 길을 찾다
  • 신아일보
  • 승인 2024.01.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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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박노섭

‘인사동시대’를 연 신아일보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매일 접하는 정치‧경제 이슈 주제에서 탈피, ‘문화콘텐츠’와 ‘경제산업’의 융합을 통한 유익하고도 혁신적인 칼럼 필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새로운 필진들은 △전통과 현대문화 산업융합 △K-문화와 패션 산업융합 △복합전시와 경제 산업융합 △노무와 고용 산업융합 △작가의 예술과 산업융합 △글로벌 환경 산업융합 등을 주제로 매주 금요일 인사동에 등단합니다. 이외 △푸드테크 △취업혁신 △여성기업이란 관심 주제로 양념이 버무려질 예정입니다.
한주가 마무리 되는 매주 금요일, 인사동을 걸으며 ‘문화와 산책하는’ 느낌으로 신아일보 ‘금요칼럼’를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새해가 밝았다. 겨울에 가장 춥다는 소한은 지나고 대한이 이번주다. 시골에서 자라서 영하 10도 쯤 돼야 겨울 맛이 제대로 난다. 최근 모처럼 폭설이라 할 만큼 눈도 제법 쌓였고 차가운 추위도 계속돼 텅 빈 들판 길을 걸으면 지난 추억이 떠오른다.

잔설이 그대로 남아있고 땅이 꽁꽁 얼어붙은 어느 날 어머니는 바구니에 호미 담아 어디론가 나가셨다. 한참 만에야 돌아오신 어머니는 머리에 쓴 수건에 서릿발이 내렸고 바구니 가득 담긴 것들을 뜰팡에 풀어 놓았다. 어머니가 다듬고 계신 것은 겨울 냉이였다.

겨울 냉이는 추울수록 향이 진해진다. 냉이를 캐보면 돌밭이나 딱딱한 응달 척박한 자리에서 캐는 뿌리가 굵고 실하다. 양지쪽 비옥한 데서 자란 냉이는 잔뿌리가 많고 잎사귀 치레로 먹을 것이 없다. 냉이는 추운 날씨와 거친 땅에서 오히려 깊게 뿌리를 박는다. 냉이를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다”하여 “동불사”라고 했다. 

냉이는 봄나물 중 제일 먼저 밥상에 오른다. 처한 환경이 악조건이라도 “괜찮다”하며 겨울의 냉기를 걷어내는 강함으로 푸르름을 선사한다. 머잖아 시장이며 길거리 노점에까지 저마다 특유의 향을 자랑하며 봄나물이 지천으로 나온다. 이중 자연의 노지에서 자란 봄나물 중 맛도 영양도 으뜸인 냉이는 특별대접을 받는다. 냉이가 얼었던 땅을 뚫고 꽃샘추위도 밀어내고 새봄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 역할을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냉이의 꽃말은 영어로 'a mother's heart'로 '어머니의 마음'이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더듬어 생각해 보니 삶의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털고 일어나 자식과 가족에게 사랑을 베푸신 어머니와 겨울 냉이는 타고난 성정이 닮아 있는 듯하다.

오랫동안 축적된 여성 파워가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기업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쟁쟁하고 탄탄한 적지 않은 기업들의 사령탑이 여성 CEO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전국에 여성 CEO 수는 314만명이다. 전체 기업 수의 40%를 넘는다. 여성의 불모지였던 기업경영에 뛰어들어 편견과 차별에 맞서 고군분투하면서 국내외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물론 2030 스타트업, 유니콘 기업까지 여성 CEO의 성공 스토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도 올해 그룹 인사 키워드 중 하나로 “여성CEO시대”를 주목했다.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수많은 난관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 한 발짝이라도 더 앞서 뛰었을 것이다. 여성이 사업해서 실패하면 주변의 우려와 냉소를 잘 알고 있기에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더 크게 있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여성 CEO들은 카리스마 보다 섬세함과 따스함을 먼저 느껴진다. 여성 CEO 리더십에는 공감하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기업가 정신이 녹아 있다. 삶의 굴곡 속에서도 자식 키우고 부모 봉양하며 가정을 지켰던 어머니의 강인함이 담겨 있다. 한겨울 혹한의 척박한 땅에서도 숨어서 봄을 키워낸 겨울 냉이의 푸르름도 함께 있다.

최근 국내외 저명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 중에는 여성경제 활동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구감소·고령화를 대응하려면 일하는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 “대한민국 여성경제 참가율은 60프로 정도로 OECD 국가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를 남성수준으로 올리면 경제성장율은 1%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제 해법은 분명해 졌다. 당면한 저출산·고령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더 큰 선진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기업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여성경제 활동을 확대할 수 있는 정부의 혁신적 정책 배려가 필요한 때다.

/박노섭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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