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때는 맞고 윤 때는 틀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문 때는 맞고 윤 때는 틀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3.11.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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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계획안 수립 참여한 '조세재정연구원' 정권 바뀌자 돌변
국토부 발주 연구용역 결론, 현 정부 입맛대로 '근본적 재검토'
작년 공청회 자료 25% 차지했던 '현실화 계획 성과' 올해는 생략
윤석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사진=대통령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연구 용역을 수행하는 정부 출연 기관이 정권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때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안 수립 용역에 참여해 국토연구원 등과 함께 '현실화율 제고'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용역 결과를 180도 바꿔 '현실화 계획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나마 작년 연구용역 후 만든 공청회 자료에는 '현실화 계획의 성과'를 비중 있게 담았지만 올해 공청회 자료에선 '성과' 자체를 완전히 생략했다.

2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는 지난 21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을 심의, 의결했다.

직전 문재인 정부는 현실화율(시세 반영률) 목표를 90%로 설정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2020년 11월에 발표했다. 이어 계획에 따라 2021년과 2022년 공시가격을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작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추진을 전면 보류했다. 국민의 부동산 보유 부담을 줄이고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 간 역전 확산을 막는다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를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전문 기관에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맡겼지만 두 번 모두 재수립 방안을 확정하지 못했다. 일단 2023년과 2024년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은 모두 2020년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7월 국토부가 발주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사업'의 제안요청서에 담긴 '근본적으로 재검토 필요' 문구. (자료=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사업 제안요청서)
지난 7월 국토부가 발주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사업'의 제안요청서에 담긴 '근본적으로 재검토 필요' 문구. (자료=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사업 제안요청서, 국토부)
조세재정연구원이 올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용역 수행 후 내린 '근본적 재검토 필요' 결론. (자료=2023년 11월20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재정연구원이 올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용역 수행 후 내린 '근본적 재검토 필요' 결론. (자료=2023년 11월20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 제안요청서 그대로 담은 듯한 결론

올해 재수립 방안 연구용역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수행했다. 지난 20일 서울시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송경호 조세재정연구원 정부투자분석센터장(부연구위원)이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 자료를 보면 조세재정연구원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국토부는 올해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제안요청서에 용역 추진 배경 중 하나로 '2024년 이후 적용 현실화 계획은 2023년의 시장 상황, 경제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본적으로 재검토 필요'라고 적었는데 용역 결과가 고스란히 '근본적 재검토 필요'로 나왔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작년에도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용역을 수행했는데 당시에는 최종 검토 의견으로 '기존 현실화 계획 1년 유예'를 제안하면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으로 장기 계획을 현 시점에서 재수립, 변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 연구용역 모두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 재수립 방안을 명확히 찾지 못하고 끝났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2022년 발표 자료 내용 구성(왼쪽)과 2023년 발표 자료 내용 구성. (자료=2022·2023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2022년 발표 자료 내용 구성(왼쪽)과 2023년 발표 자료 내용 구성. (자료=2022·2023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 기관·발표자 같은데 달라진 구성

지난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는 11월4일에 열렸다. 당시에도 발표는 송경호 부연구위원이 맡았다. 작년과 올해 연구용역 수행 기관과 공청회 발표자는 같은데 발표 자료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지난해 연구용역 결과 공청회 발표 자료는 총 39쪽 분량으로 제작됐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뭔지 먼저 설명하고 현실화 계획 필요성과 성과를 얘기한 뒤 계획 수정·보완에 대해 언급하는 순서로 구성됐다.

올해 공청회 발표 자료는 총 25쪽으로 줄었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추진 경과를 소개한 뒤 계획 평가 결과와 계획 추진 여건 분석 결과를 언급하고 추진 방안을 제안하는 흐름으로 이뤄졌다.

언뜻 보면 분량 정도 차이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해 발표 자료에는 작년 발표 자료에서 10쪽 분량이나 차지했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의 성과' 분석 결과가 통째로 빠졌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연구용역 공청회 발표 자료에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의 성과로 △저가 주택에서 나타난 현실화율 역진성 완화 △동일 지역 내 공시가격-시세 순위의 정렬 크게 개선 △저가 주택의 현실화율 분포가 고가 주택보다 더 큰 현상 완화 △가격대별 현실화율 분포 축소에 따른 균형성 제고 등을 담았다.

하지만 올해 발표 자료에선 '성과'라고 얘기할 내용을 찾기 어렵다. 현실화 계획에 대한 평가와 추진 여건 모두 부정적인 내용으로만 채웠다.

2020년 공청회 자료에 담긴 '유형 간 불균형'의 개념. (자료=2020년 10월27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국토연구원과 조세재정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수행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립 연구 용역을 통해 '부동산 유형 간 불균형' 문제를 공시가격 현실화율 격차에서 찾았다. (자료=2020년 10월27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국토연)
조세재정연구원은 올해 수행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용역을 통해 '부동산 유형 간 불균형 문제'를 유형별로 다른 현실화율 제고 속도에서 찾았다. (자료=2023년 11월20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재정연구원은 올해 수행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 용역을 통해 '부동산 유형 간 불균형 문제'를 유형별로 다른 현실화율 제고 속도에서 찾았다. (자료=2023년 11월20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 발표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 '유형 간 불균형'의 양면성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국토부가 발표했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립 작업에도 참여했다. 국토연구원(주관)과 조세재정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함께 했다.

지속해서 공시가격 현실화 관련 연구 용역을 수행 중인 조세재정연구원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문 정부에서 윤 정부로 넘어오면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 2020년 10월27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안' 공청회 발표 자료를 보면 '부동산 유형 간 불균형'이라는 표현을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간 현실화율 격차에 초점을 두고 사용했는데 올해는 유형별 현실화율 제고 속도가 다르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 사용했다. 

문 정부 때는 불균형을 개선하고자 유형별 현실화율 제고 속도를 달리하는 방안을 제안한 연구기관이 윤 정부 때는 오히려 유형별로 다른 현실화율 제고 속도가 불균형을 유발한다고 평가한 것이다.

또 2020년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안 발표 자료에는 '낮은 현실화로 부동산 자산 가치 반영 미흡', '공시가격 현실화와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표현된 현황 분석 결과가 올해 재수립 방안 발표 자료에선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국민 보유 부담 확대', '국민 인식과 괴리된 현실화 계획'으로 탈바꿈했다.

김오진 국토부 1차관은 지난 21일 2024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발표하면서 "내년 초, 전문 연구용역과 국민들의 인식 조사를 실시해 국민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현실화 계획 개편 방안을 내년 하반기까지 마련하도록 하겠다"며 "부동산 가격 공시 제도가 국민의 눈높이와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dh4508@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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