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단순하고 불분명한 '주먹구구식 LH 전관 대처법'
[데스크 칼럼] 단순하고 불분명한 '주먹구구식 LH 전관 대처법'
  • 천동환 건설부동산부장
  • 승인 2023.09.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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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면 하지 마", "차라리 헤어져", "그냥 그만둬"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그냥 학교 다니지 말아라"라고 하고, 불만을 얘기하는 연인에게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라"고 하고, 어려운 업무로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그냥 사표 쓰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말 한마디면 복잡한 상황이 해결될 것 같다. 문제 발생과 관련한 행위 자체를 중단하면 문제가 눈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시험을 예로 들어보자. 모의고사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 고전한 학생이 풀이 방법을 배우고 공부하는 대신 수능시험 자체를 포기해버리면 어떨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정상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국토교통부가 국토부와 국토부 소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관(前官) 카르텔 철폐 방안을 만들고 있다. 사건은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발생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신축 공사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표 시공사인 GS건설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듯했다. 그러나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무량판 구조 전단보강철근 누락'이 다수 LH 아파트에서 확인되면서 GS건설만의 잘못이 아닌 양상이 됐다. 그러더니 전단보강철근 누락 단지 설계·감리업체 중 상당수가 LH 퇴직자를 채용한 이른바 LH 전관 업체로 알려지면서 문제의 초점이 '전관'에 맞춰졌다. 최근 여론은 전관 때문에 LH 아파트가 무너졌다고 느끼게 할 정도가 됐다.

이런 여론을 만든 데는 LH 아파트 사태와 전관을 단순 인과관계로 엮어 보도한 언론과 이런 보도에 단순 반응한 국토부가 크게 한몫했다. 국토부는 LH 전관 카르텔 철폐를 위해 LH 발주 건설 공사 설계·감리 분야를 중심으로 LH 전관 개입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기본방향을 정했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전관 업체 용역 계약을 제한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전관 자체를 '악(惡)'으로 규정한 것 같다. 이건 분명한 오판이다. 전관이 나쁜 게 아니라 전관 카르텔이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관'과 '전관 카르텔'을 분명히 구분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관 자체가 나쁘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를 그냥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직자가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관련 업계에 재취업하거나 창업하는 건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 민간회사가 특정 공공기관 대상 협업에 해당 기관 퇴직자를 활용하는 건 지극히 효율적인 인력 운용이다. LH에서 수십년간 공공주택 업무를 수행한 사람이 퇴직 후 LH 공공주택을 설계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전관 자체를 나쁘다고 매도(罵倒)하면서 공공과 민간 간 인력 교류에 장벽을 치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거나 다를 바 없다. 100세 시대를 논하는 우리 사회 전체로 봐도 도움 될 게 없는 접근법이다.

문제 해결의 초점을 구체적으로 '나쁜 카르텔'에 맞춰야 한다. 카르텔도 싸잡아서 나쁘다고 할 게 아니다.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카르텔을 정확하게 찾아내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난달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한 이한준 LH 사장은 "전관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관 비판과 정부의 대응 방법이 얼마만큼 주먹구구식인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확한 기준과 정확한 분석 없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전관에 대충 떠넘길 생각은 말아야 한다.

cdh4508@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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