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공협이 법정단체로 가는 길
[데스크칼럼] 한공협이 법정단체로 가는 길
  • 천동환 건설부동산부장
  • 승인 2023.06.1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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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오면 열심히 해보겠다", "기회를 주면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

사람들은 흔하게 이런 다짐을 한다. 그런데 말의 순서를 바꿔보면 어떨까?

"열심히 해서 기회를 잡겠다"라거나 "실력을 증명해서 기회를 얻겠다"라고 말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한공협)를 법정단체로 지정하려는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안 몇 건이 1~2년 전 국회에 발의됐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고 의견이 분분한 법안이어서 그런지 처리가 더디다. 국회 통과 가능성 자체가 아직은 불투명하다.

한공협이 법정단체가 되면 개업공인중개사는 의무적으로 한공협에 가입해야 한다. 또 부동산 중개 시장에 대한 한공협의 감시·관리 권한이 커진다. 한공협으로선 협회의 위상을 높이고 업계의 이권을 강화할 수 있는 더 없이 중요한 기회다.

이 때문에 한공협은 법정단체 자격을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쓴다. 

우선 누리집 첫 화면에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단일 법정단체로 국민재산을 지킵니다'라는 문구 배너를 내걸고 배너에 연결한 별도 페이지를 통해 법정단체화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1인 1정당 가입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11만여 명 개업공인중개사가 주요 정당에 권리·책임 당원으로 가입하면 업계의 요구를 국회에 더욱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법정단체화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지난 2월에는 법정단체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진행했다. 청원 동의 수를 늘리고자 회원과 회원의 지인·가족의 참여를 권유했다.

내부 결집에도 힘을 쏟았다. 회원을 대상으로 '대정부 협상력 강화', '무자격 중개 행위 근절', '직방에 대한 대응력 강화' 등을 법정단체 실현 시 얻을 수 있는 이점으로 홍보했다.

한공협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법정단체가 되면 부동산 중개 시장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임의단체인 현 상태에서 그러지 못하는 한계를 호소했다.

법정단체가 되고자 하는 한공협의 전략은 크게 '여론 형성', '정치적 영향력 강화', '조건부 공약'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기회를 주면 잘해보겠다"는 전형적인 사후약속형인데 그다지 공감과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과 반대되는 전략이면 어떨까? 한공협이 부동산 시장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먼저 증명해 보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회를 잡는 방식 말이다. 억지로 여론을 만드는 것보다 국민에게 인정받고 지지받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정치 세력화할 게 아니라 협회 자체로 정치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해 보인다.

물론 이런 전략이 단기간에 목적지로 가는 길은 아닐 거다. 대다수 공인중개사가 공인(公認)이란 수식어에 어울리는 자질을 갖추고 협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장기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런 후에 법정단체화 여부를 논하는 게 맞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는 온전히 협회와 업계에 달렸다.

이종혁 한공협 회장은 1인 1정당 가입 캠페인 홍보 영상에서 "공인중개사법이 생긴 지가 벌써 36년이 지났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는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은 거래가 너무도 많다"고 말했다.

이 말이 "공인중개사와 한공협이 국민 신뢰를 얻을 기회의 시간을 36년이나 흘려보냈다"는 한탄으로 드리는 이유는 뭘까? 한공협 법정단체화에 정말 필요한 건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지난 시간에 대한 성과와 증명'이다.

cdh4508@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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