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논란의 LH' 배척할 텐가 바로 세울 텐가
[데스크 칼럼] '논란의 LH' 배척할 텐가 바로 세울 텐가
  • 천동환 건설부동산부장
  • 승인 2023.10.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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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 본사를 둔 한 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몇 단계 심사를 거쳐 다른 응시자 두 명과 함께 임원들 앞에서 최종 면접을 봤다.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습니다. 내 회사라는 생각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하겠습니다." 

"입사 후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답변을 들은 한 면접관은 "꿈이 크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은 커녕 사원도 되지 못했지만 20대 청춘의 열정은 진심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올해 마지막 국정감사를 보고 있으니 당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20대 패기 넘치는 청춘에게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매력적인 도전 대상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국감위원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게 'LH 임원 외부 공모'에 관해 물었다.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를 불러온 LH를 혁신하기 위해 상임이사를 외부인으로 채우는 게 합리적이냐는 질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LH 직원들의 임원 승진 기회를 차단하는 게 옳은 선택이냐는 물음이었다.

김병욱 위원은 외부 공모 자체의 기대 효과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LH 직원들의 승진 희망과 기대를 고려하면 더욱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자 원희룡 장관은 LH가 비상 상황인 데다 신상필벌이 필요하다며 임원 외부 공모 당위성을 설명했다.

신축 공사 중인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지고, 있어야 할 철근이 없고, 콘크리트 강도는 기준 미달이고,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LH에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그 방법이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우수 인재 채용 가능성을 위축시키는 게 돼선 안 된다.

문제는 LH의 특정 책임자와 특정 업무 체계 부실에 있는 것이지 LH라는 조직 자체 또는 모든 LH 직원에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LH는 죄책감에 가둬 두고 옥죌 대상이 아니다. 문제를 개선하고 국민을 위해 건실하게 바로 세워야 할 대상이다.

외부인 공모로 당장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자체도 의문이다. 원 장관은 잘못된 관행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미 역대 LH 사장들은 모두 외부인이다. LH 직원 땅 투기 사태 후 내부통제 강화 과제를 안고 2021년 4월 임명됐던 김현준 전 사장은 심지어 국세청장 출신이다. LH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인물을 수장으로 맞이한 거였다.

현 이한준 사장 역시 외부인이지만 LH는 유례없는 위기에 놓여 있다. 원희룡 장관의 국감 답변대로면 이번 LH 상임이사 외부 공모는 이 사장이 주도했다. 원희룡 장관과 이한준 사장은 'LH 출신 임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반대로 보면 '외부에서 온 LH 사장들이 제 역할을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외부인은 내부인보다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단순 논리라면 외부인은 내부인보다 조직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약할 수 있다. 

이한준 사장은 철근 누락 사태 발발 후 일부 해명 과정에서 LH와 자신을 분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부에 원인 제공자가 있더라도 LH를 대표하는 사장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공개적으로 책임을 따지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이 사장은 언론을 향해 다른 임원, 직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그의 태도를 봤을 때 이 사장이 주도하는 혁신 방안이 자칫 LH를 억누르고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정 사안만 놓고 LH 혁신 방안 전체에 대한 우려를 키우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임원을 외부인으로 채우는 방식이 정착하면 김병욱 위원 말처럼 LH 직원들이 조직 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높은 목표는 처장이나 부장에 그칠 것이다. 우수한 인재에게 외면받는 LH가 될 수도 있다. 외부인 임원이 가져올 효과가 LH의 미래 인재와 맞바꿀 만큼 확실한 것인지 의문이다.

LH를 억압하고 제약하는 게 혁신의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혁신의 목적은 잘 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더욱 활발하게 제대로 일하는 LH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