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있으면 LH 사업 수주 불가…건축사사무소 대표 "눈물 머금고 직원 내보내"
전관 있으면 LH 사업 수주 불가…건축사사무소 대표 "눈물 머금고 직원 내보내"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4.01.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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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공모선 평가위원 15명 점수 0점에 해당하는 감점
민간 업체서 일하던 'LH 2급 이상 퇴직자들' 대부분 집으로
LH가 지난 24일 공고한 '광주산정 공공주택지구 도시건축통합계획 설계공모'에 대한 평가 방법 중 LH 전관 관련 감점 기준. (자료=광주산정 공공주택지구 도시건축통합계획 설계공모지침)
LH가 지난 24일 공고한 '광주산정 공공주택지구 도시건축통합계획 설계공모'에 대한 평가 방법 중 LH 전관 관련 감점 기준(붉은 선 안). (자료=광주산정 공공주택지구 도시건축통합계획 설계공모지침)

LH 퇴직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LH가 용역 입찰 평가에 전관 업체 감점 기준을 만들자 LH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 건축사사무소와 건설사 등 민간 업체들이 잇따라 LH 출신 직원들을 내보냈다. 건축설계공모 사례를 보면 LH가 만든 전관 감점 제도는 평가위원 15명의 점수를 모두 0점 처리하는 효과를 낼 정도로 강력하다. 업체들은 부당한 조치라고 하소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LH 출신들과 이별하고 있다.

28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LH는 지난 2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광주산정 공공주택지구 도시건축통합계획 설계공모'를 공고했다.

이번 설계공모의 지침서를 보면 제안 내용 평가 항목은 크게 '도시건축통합계획 구상안' 집단과 '특화구역 도시공간계획안' 집단으로 나눈다. 2개 집단에 각각 70점과 30점을 배정해 총점 100점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평가 항목과 별도로 감점 사항이 몇 가지 있다. LH 퇴직자 전관 보유 시 10점 감점, LH 3급 퇴직자가 참여기술인으로 참여하면 5점 감점이다.

주관사는 물론 공동참여 구성사 중 1곳이라도 1인 이상 LH 전관을 보유했거나 3급 퇴직자가 기술인으로 참여하면 설계 작품 심사 점수를 감점한다.

존재 자체로 10점 감점 사유가 되는 'LH 전관'의 기준은 LH 퇴직일로부터 3년 이내면서 △LH 재직 당시 직급 2급 이상 △LH 재직 당시 직급과 상관없이 현재 업체에서 임원으로 근무 △업체에 조언 또는 자문 등 지원하고 그 대가로 임금 또는 봉급을 받는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LH는 지난 21일 '공공주택 품질 강화를 위한 건설혁신 방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LH 퇴직자가 소속된 업체에 용역 심사에서 최대 감점을 부과해 건설사업 수주를 원천 배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전관 업체 배제 기준은 작년 9월부터 이미 적용 중이었다. LH 전관 업체가 용역 입찰에 들어오면 건축설계공모에선 총점 150점 중 15점을 감점하고 단지설계공모에선 총점 100점 중 10점을 감점한다. 용역종심제 설계·감리에는 총점 100점 중 6점을 감점하고 적격심사 기술용역에선 총점 100점 중 10점을 감점한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부처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LH 혁신방안'에 담긴 전관 업체 입찰 제한 방안(붉은 선 안). (자료=국토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부처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LH 혁신방안'에 담긴 전관 업체 입찰 제한 방안(붉은 선 안). (자료=국토부)

건축·설계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감점 기준을 극복하고 LH 사업을 할 수 있는 전관 업체는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건축설계공모 사례를 보면 LH 전관 보유만으로 평가 점수 15점을 깎이는데 이렇게 되면 설계 작품 평가위원 15명이 1점씩 주는 점수를 하나도 받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 영향을 받는다. 전관이 없는 경쟁 업체가 평가위원 점수를 1점만 받더라도 전관 업체는 밀려나는 구조다.

A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전관 업체에 대해) 현상설계 같은 경우는 감점 15점을 주는데 심사위원 1인당 주는 점수가 1점 정도 된다"며 "그러니까 (전관 업체가) 들어오면 (심사위원 점수) 0점을 맞고 시작하는 거라서 15명이 다 우리를 찍어도 당선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B 건축사사무소 대표도 "(전관 업체는) 심사 받아보나 마나 무조건 꼴찌다"며 "마이너스 15점이면 심사위원 15명에게 다 (점수를) 받아도 0점이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LH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 업체들은 최근 대부분 LH 출신 직원들을 내보냈다. LH에서 2급 이상으로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직원은 사업 수주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 정리됐고 LH 퇴직 후 3년이 지났거나 3급 이하로 퇴직한 직원 중에도 재취업한 업체에서 짐을 싼 사례가 있다. LH 전관 논란을 겪으면서 일부 민간 업체는 LH 출신을 보유한 것 자체가 위험 요소라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C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LH 출신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퇴직시켰다"며 "(관계 부처 합동 LH 혁신 방안이) 넘어올 때 (전관 업체 감점 기준이) 없어질 거로 생각했다. 끝까지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전관 업체 감점 기준을) 살렸고 LH 44개 혁신안에 '전관은 감점을 주겠다'라고 아예 그냥 딱 박아놓고 하니까. 세상에 그런 악법이 어딨나."라고 말했다.

또 A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전관들이 다 해 먹는 줄 알고 있다. (언론이) 실제 그렇게 보도했다. 너무 속상하다. 그런 적도 없고 최선을 다했는데 (LH 출신들이) 거의 다 나갔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건축·설계업계에선 LH가 새로운 규제를 만들면서 업계가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은 물론 소급 적용하는 불합리까지 행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관으로 분류할 때 '퇴직 후 3년 이내'라는 기준을 넣었는데 이미 2년 전에 LH에서 나와 민간 업체에 입사한 이들까지 직장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얘기다. 

C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제도를 만들면서 소급한다는 건 진짜 처음 보는 일이다"며 "소급을 해버리니까 그 조치가 나오기 전에 다른 회사(민간 업체)에 가 있던 사람들(LH 퇴직자들)이 다 해당돼 버리는 거다. 다 잘렸다."라고 말했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