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안전 파헤치기] 코레일, 승강장 안전관리 축소…위태로운 승객들
[철도안전 파헤치기] 코레일, 승강장 안전관리 축소…위태로운 승객들
  • 황보준엽 기자
  • 승인 2019.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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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위로 떨어질 듯 '안전선 무시한 보행 방치'
경제논리 속 10여개 승차홈에 안내원은 1~2명
지난 18일 서울시 용산구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지난 18일 서울시 용산구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사진=황보준엽 기자)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철도전성시대에 있다. 전국 주요 도시를 고속열차가 누비며 1일 생활권으로 묶은 것은 이미 옛일이고, 그 속도를 높여 반나절 생활권을 향해 가고 있다. 현재 정부는 갈라진 한민족을 다시 이어붙일 남북철도사업을 재개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뻗어나갈 한국 철도의 미래를 구상 중이다. 다만, 이 모든 철도의 미래는 '안전'이라는 필수조건을 전제로 한다. 한국 철도는 과연 정상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부분을 뜯어 고쳐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철도운행 현장의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정책적 대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철도의 구석구석을 촘촘히 들여다봤다.<편집자주>

"호루라기 불고 깃발 흔들며 직접 승객 안전을 확인하는 업무는 이제 거의 없어요. 혼자서 승강장 두 곳을 담당하고 있어, 승객 안내를 하다보면 안전까지 신경 쓰기 어려워요."(서울역 역무원 A씨)

언제부턴가 기차역 승강장에서 위험을 알리던 호루라기 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정원 감축으로, 안내요원이 줄어 승차홈 안전관리까지 담당하기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현재는 역마다 10개 내외에 달하는 승차홈을 안내직원 1~2명이 도맡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인력 부족으로 승차홈에 안전원을 직접 내려보내지 못하는 역이 부지기수다.

지난 18일 서울역에서 한 승객이 안전선을 밟으며 통행하고 있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지난 18일 서울역에서 한 승객이 안전선을 밟으며 통행하고 있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지난 16~20일 본지 기자들이 서울시 용산구 서울역과 영등포역, 대전역 등을 직접 확인한 결과, 열차 승강장은 잠재적 위험 속에 방치돼 있었다. 승객들이 노란색 안전선을 넘나들어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다.

17일 오후 7시쯤 서울역 승강장은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일단 승강장에 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열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특별히 안전관리나 통제가 이뤄지는 것은 없었다. 열차와 승객 간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바닥에 노란색으로 표시한 안전선만이 승강장 위 유일한 안전시설이었다. 그러나 정작 승객들은 안전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많은 이들이 노란색 선을 일부러 밟으며 걸었고, 안전선을 기준으로 선로 가까운 쪽으로 걷는 이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이들과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저러다 선로 위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몇 분이 지나자 기자 뒤로도 긴 줄이 만들어졌다. 뒤늦게 내려와 구름 같은 인파를 이리저리 헤치며 이동하던 몇몇 승객들은 이내 답답했던지 안전선을 무시하고 선로 쪽으로 내달렸다.

곳곳에서 아찔한 상황이 수시로 연출됐지만, 이 같은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저기 설치된 CCTV와 스피커는 사고 예방과는 무관해 보였다.

그렇게 약 10여분이 흐르고 열차 진입이 임박해서야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노란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곧 열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승강장을 향해 달려 들어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승차 위치를 찾는 승객들의 위험한 이동은 계속됐다. 선로 가까이 있던 사람이 노란선 바깥으로 밀리는 상황도 반복됐다. 다음 날 저녁에도 그 이튿날에도 서울역 승강장은 불안한 상태로 승객들을 맞고 있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역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부산행 KTX 열차가 완전히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승객들이 안전선을 넘어 위험하게 이동하고 있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지난 20일 오후 서울역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부산행 KTX 열차가 완전히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승객들이 안전선을 넘어 위험하게 이동하고 있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서울역에서 드러난 승강장 위험은 대전역과 오송역, 천안아산역 등 전국 주요 기차역에서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간혹 일부 승차홈에 역무원이 나와 승객들을 안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 마다 많게는 10개가 넘는 승차홈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부실한 승강장 안전관리는 실제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6년4월25일 대전역 승강장에서는 40대 여성이 열차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 안전선을 넘어 이동하던 중 객차 측면에 어깨가 걸려 열차 바퀴 쪽으로 몸이 끌려들어 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여성은 허리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듬 해 7월29일 서대전역 승강장에서는 30대 여성이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선로 안쪽으로 쓰러졌다. 마침 승강장으로 들어오던 ITX 열차와 부딪친 이 여성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지난 19일 대전역에서 한 열차 승객이 노란색 안전선을 넘어 걷고 있다.(사진=천동환 기자)
지난 19일 대전역에서 한 열차 승객이 노란색 안전선을 넘어 걷고 있다.(사진=천동환 기자)
지난 19일 대전역 승강장으로 새마을호 열차가 들어오고 있지만, 한 여성(빨간 점선)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노란색 안전선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당시 해당 승차홈에는 안내원이 없었으며, 진입하는 열차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사진=천동환 기자)
지난 19일 대전역 승강장으로 새마을호 열차가 들어오고 있지만, 한 여성(빨간 점선)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노란색 안전선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 당시 해당 승차홈에는 안내원이 없었으며, 진입하는 열차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사진=천동환 기자)

철도역 현장 직원들은 이 같은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코레일에는 안내원들이 직접 승강장에 나와 안전관리를 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기보다는 경제성을 우선한 인력 운용에 집중하면서 승강장 당 안내원 수 자체가 승객 안전을 맡기기 힘든 수준이다.

서울역에서 근무하는 A역무원은 "옛날에는 호루라기를 불고 깃발을 흔드는 열차감시원이 있었는데, 사라진 지 10년이 넘었다"며 "종종 '위험하다'고 말하는 승객도 있고, 실제로 승객이 위험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또, 서울역 B역무원은 "이렇게 긴 승강장을 한두 명이서 맡고 있으니, 사실 안내 업무에 더불어 안전관리까지 하기는 힘들다"며 "승객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코레일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코레일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역 승강장에서 아이들이 노란색 안전선을 무시하고 뛰어다니며 놀고 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지난 18일 저녁 서울역 승강장에서 아이들이 노란색 안전선을 무시하고 뛰어다니며 놀고 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사진=황보준엽 기자)

[신아일보] 황보준엽 기자

hbjy@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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