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사과, 금배는 잘못 없다
[데스크칼럼] 금사과, 금배는 잘못 없다
  • 박성은 생활유통부장
  • 승인 2024.03.12 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 갈 때 확실히 밥상물가가 크게 올랐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건강을 위해 거의 사시사철 사먹는 사과는 네다섯 알 한 봉지 1만원 중후반대로 부담이 무척 커졌다. 자연스럽게 알이 적거나 ‘못난이’ B급 사과 봉지를 찾게 됐다. 된장찌개에 꼭 넣는 애호박은 이전에 개당 1000원도 안했는데 지금은 3000원을 훌쩍 넘는다. 추운 날에 까먹는 귤은 요즘엔 보기도 힘들다. 마트 매대에 있는과일, 채소 대부분 정부 지원의 농축산물 할인쿠폰으로 20% 할인가라고 표시됐음에도 “왜 이렇게 비싸”라는 말이 계속 입에 붙을 뿐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동향’에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 달 만에 3%대로 다시 뛰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2.4%에서 8월 3.4%로 오른 뒤 5개월 연속 3%대를 웃돌았다. 올 1월 2.8%로 잠시 떨어졌지만 2월에 다시 올랐다. 과일·채소 가격 상승세가 주된 이유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실제 사과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71.0%, 귤 78.1%, 배 61.1% 치솟았다. 전체 신선과일 물가로 넓혀보면 1년 전과 비교해 41% 급등했다. 32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과일 사는 게 겁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채소 역시 대파가 50.1% 오르는 등 전체 가격은 12.3% 상승했다. 

과일, 채소 가격이 치솟는 이유는 지속된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불량, 농촌 고령화 등으로 생산이 줄고 재배면적이 감소한 탓이다. 현재 사과 가격이 크게 오른 주된 이유는 생산 급감이다. 국내 사과 생산량은 2014년부터 연평균 약 51만t 안팎이었는데 작년에 냉해, 장마 등으로 흉작 피해가 크면서 40만t을 밑돌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올해 사과 재배면적이 3만3800㏊에서 10여년 뒤인 2033년 3만900㏊로 9%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축구장 4000개 이상의 면적에 달하는 사과 과수원이 없어질 것이란 얘기다. 생산량으로 따지만 사과 2만t에 육박한다. 주산지도 청송, 문경 등 경북 중심에서 강원, 경기 지역으로 북상 중이다. 평균 기온이 상승한 영향이 크다. 비단 사과만의 일은 아니다. 

경기불황 탓에 지갑 사정은 얇아지는데 밥상물가는 치솟고 서민들 입장에선 이래저래 ‘고난의 행군’이다.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거의 매일 회의를 열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3~4월 사과·감귤·대파 등 가격이 급등한 13개 품목에 204억원 규모의 납품단가를 지원하고 전·평년 대비 30% 이상 가격이 오른 모든 과일·채소에 2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수입과일 할당관세(0%) 품목을 확대하고 특히 바나나와 오렌지는 공공기관(aT)이 직수입해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모든 수단과 자원을 총동원해 국민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빠르게 완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국민 다수는 딱히 체감하기 힘들다. 정부의 이 같은 대책은 사실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됐기 때문이다. 국산 농축산물 가격이 뛰거나 상승할 조짐이 보이면 긴급 예산을 투입하거나 수입물량 확대 또는 관세를 인하하는 ‘땜질 처방’ 위주로 대응해 왔다. 이상기후, 고령화, 생산비 부담으로 시름이 큰 농가 입장에선 정부의 이런 식의 대응이 반복될수록 굳이 과일, 채소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어진다. 밥상은 점차 수입 먹거리만 가득할 수 있다. 

농가에서 소비자까지 이어지는 농축산물 유통단계는 여전히 복잡하다. 먹거리 가격안정 필수조건인 산지 조직화와 규모화 역시 속도가 더디다. ‘금(金)사과’, ‘금배’, ‘금대파’란 제목의 기사들이 연일 보이는데 따지고 보면 사과, 배, 대파는 잘못이 없다. 유통 혁신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투자와 의지가 부족한 탓이다. 

parkse@shinailbo.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