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광장시장과 슈링크플레이션
[데스크칼럼] 광장시장과 슈링크플레이션
  • 박성은 생활유통부장
  • 승인 2023.12.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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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광장시장은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돈이 부족했던 20대 대학생 때는 몇 천원 또는 만원 정도 각출해서 모듬전과 마약김밥, 떡볶이 안주를 두고 막걸리를 몇 통째 마셔도 부담 없이 술자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직장인이 된 30대에는 좀 더 값비싼 육회와 소맥 몇 잔씩 돌려도 부담은 크지 않았다. 왜냐면 사장님들이 맛보라고 서비스로 안주를 더 얹어주는 ‘푸근한 인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광장시장은 코로나 된서리를 3년 여간 맞다가 올 들어 사람들이 다시 오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특히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가지각색의 ‘한국의 맛’이 시장에 다 모여 있어서다. 

예전 추억을 안주 삼고 싶어 최근 느지막한 저녁에 광장시장을 찾았다. 시장 한 가운데로 좌판을 깔고 전이며 떡볶이며 김밥을 파는 상인들이 여전했다. 다만 나 같은 현지인들은 거의 찾기 힘든 반면에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좌판에 둘러앉아 먹는 모습이 생경했다. 

지인과 먹거리를 시키는데 ‘1인 1주문 원칙, 카드결제 불가’란 푯말이 눈에 띄었다. 1인 1주문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막상 푯말을 보니 괜한 거부감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결제하는 이 시대에 카드결제 불가는 이해가 안됐지만 시장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각자 떡볶이 한 접시씩 시켰다. 검지·중지 합친 지름의 가래떡 네 덩이에 작은 어묵 두어 개와 파 조금, 이게 다였다. 고물가라고 하지만 시장 떡볶이라고 하기엔 야박한 감이 없지 않았다. 순대와 간 몇 개 썰어둔 한 접시는 6000원, 애매한 길이의 꼬치어묵은 2개 3000원이었다. ‘시장=가성비’라는 말은 옛말이었다. 옆자리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현지인이야 이 가격이 얼마나 비싼 건지 체감되지만 외국인들은 당장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불쾌하고 속은 느낌이 든다면 이들이 과연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새 불거진 광장시장 ‘바가지요금’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되지 않은 크기의 모듬전 10개에 1만5000원으로 판 가게가 어느 유튜버 신고로 논란이 확산되면서 결국 영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았다. 해당 유튜버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광장시장을 소개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비단 이 가게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인천 소래포구 전통시장의 ‘다리 없는 꽃게’, 서울 종로 포장마차 ‘석화 7개 2만원’ 등 불쾌한 일들이 왕왕 벌어졌다. 단순히 가격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소비자를 농락하는 것과 다름없다. 

식품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가격은 유지하면서 제품 용량을 줄인 편법 인상)’ 문제도 소비자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 5개 들었던 핫도그 제품을 슬그머니 1개 빼버리고 우유와 치즈 용량은 별도 공지 없이 10% 줄였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슈링크플레이션 실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37개 제품이 이 같은 ‘꼼수인상’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식품업계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생산비 부담은 심해져가고 이익률은 떨어지는데 정부는 계속해서 가격 올리지 말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래놓고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 근절을 한답시고 규제를 또 만드니 답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를 기만한 건 잘못이다. 신뢰를 저버리고 잠깐의 이익을 택한 꼴이다. 당장 매를 맞아도 정직한 게 낫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공법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게 맞다. 꼼수로 점철된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한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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