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위기'라는 단어
[데스크칼럼] '위기'라는 단어
  • 박성은 생활유통부장
  • 승인 2023.03.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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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경제위기’, ‘산업위기’라는 우울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터널을 겨우 벗어난다 싶더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인 경기둔화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폭풍에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로 금융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8%에서 1.6%로 낮췄다. 

바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보니 안에서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물가 압박은 여전하다. 상대적으로 벌이가 많지 않은 젊은층이 이제는 ‘플렉스(FLEX, 과시적 소비)’보다 하루 지출 ‘0원’에 도전하는 무지출 챌린지에 나서는 것은 지금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경기가 어려우니 소비심리가 죽고 사람 발길이 잦아야 할 유통매장 역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발표한 올 1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서 오프라인 매장 매출 증가율은 -0.5%였다. 지난해 1월의 경우 18.4%였다. 집 근거리인 편의점을 제외한 마트,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SSM) 모두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대형마트 1위 이마트가 내달부터 점포 영업시간을 한 시간 단축을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백화점·마트·온라인 등 5개 소매유통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3 유통산업 전망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국내 소매시장은 전년 대비 성장세가 1.8%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시장 전망에 대해 응답자 절반을 웃도는 55.3%는 부정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주 요인(중복응답)으로 △소비심리 악화(97.2%) △경쟁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77.8%) △일상회복에 따른 비대면 소비 감소(55.6%) 등이다. 지금의 이 시기가 단순히 ‘보릿고개’를 견디는 수준이 아니며 ‘고비’를 넘어 ‘생존’을 논할 정도로 위기감이 크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그만큼 유통가 오너, 전문경영인(CEO)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해졌다. 이들의 경영철학이 당장은 기업 생존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국내 유통업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통 맏형 롯데의 신동빈 회장은 ‘영구적 위기(Permacrisis) 시대’의 도래를 얘기하면서 그룹 전반에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당장의 실적 개선에 목매기보다는 기존 틀을 과감하게 부숴야 한다고 강조했다. CJ 손경식 회장은 급변하는 국내외 경영환경이 오히려 아주 큰 도약의 기회라고 말했다. 위기를 잘 활용해 퀀텀점프(비약적 성장)를 할지, 안주하며 존재감 없이 쇠퇴할지 선택할 시기라고 설파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편의점 이마트24 상품 전시회에 이어 새롭게 오픈한 스타벅스 북한산점을 잇달아 찾으며 ‘고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유통의 가장 기본인 고객들이 열광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보이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역시 최근 정기주주총회에서 “기본으로 돌아가 고객 중심의 사업모델을 재구축하겠다”며 고객의 니즈(Needs)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혹자는 혁신하지 않으면 유통의 위기를 넘어 종말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위기(危機)라는 말에는 ‘위험’과 ‘기회’ 모두 담겨있다. 위기를 딛고 유통업 게임체인저로 누가 부상할지 궁금하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