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빠진’ 선거제 전원위, 난상토론에 무용론까지 커져
‘맥 빠진’ 선거제 전원위, 난상토론에 무용론까지 커져
  • 진현우 기자
  • 승인 2023.04.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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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없는 발표에 ‘선거제 개편’ 유불리 앞세운 난상토론
청년-여성-장애인 등 다양성·대표성 강화 위한 실효적인 방안 없어
12일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가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 초등학생들이 방청석에 앉아 논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가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 초등학생들이 방청석에 앉아 논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12일로 사흘째 토론을 이어갔지만 최종안을 도출하기보다는 백가쟁명식 의견만을 나열하는 데 그쳐 ‘맥 빠진 전원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원위에 세 가지 최종안이 올라왔지만, 여야 의원들은 저마다 각각 선거제 개혁안을 내놓아 혼선이 가중됐다. 각 정당별, 지역구·비례대표 국회의원별, 수도권·비수도권 등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대표성을 존중하는 선거제 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작 청년·여성·장애인 등 상대적으로 대표성이 약한 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 참여 방안은 나오지 않아 빈축을 샀다.

◆준비한 원고만 읽고 들어가는 '토론 아닌 토론'...보장된 질의·답변 과정도 활용 안 해

이번 전원위는 각 발언자 당 7분씩 토론 시간을 보장했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대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을 출석시켜 의원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질의를 통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12일에는 교섭단체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천한 전문가까지 전원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질문하는 의원들은 소수에 그쳤다. 의원들은 사전 준비한 원고를 낭독하는 것에 그쳤다. 여기에 앞서 이뤄진 발언에 대한 피드백은 찾아볼 수 없었고 때때로 상대 진영에 대한 공세도 곁들여 집단 야유나 고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 대해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지난 이틀 동안 전원위는 토론도 합의도 없었다. 의석수를 늘리거나 줄이자는 의견부터  비례대표를 늘리거나 폐지하자는 의견,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거나 도농복합 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왔다”고 비판했다. 또 “이런 회의에 참석률이 점점 저조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라 덧붙였다.

◆다양성·대표성 없는 선거제도 개편...'고양이에 생선 맡기기' 비판 나와

당초 이번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핵심은 다양성과 대표성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남인순 위원장은 지난 2월 선거제도 개편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선거 결과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고 지방소멸 대응·지역주의 완화·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전원위원회에서 어떻게 대표성을 강화할 것이며 다양한 민심을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의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청년 쿼터제’와 ‘선거 비용 부담’ 차등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개방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여성 의원 비율 확보 대책을 가져야 한다. 정당의 지역구 공천에도 한 성의 비율이 70%가 넘지 않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한 듯 비례제 확대를 위해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소수에 불과했다. 여론의 지탄을 받은 위성정당의 재출현을 막기 위해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손봐야 한다는 데는 여야가 한목소리였다.

여당의 한 청년 정치인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치권 안에 굳건한 기득권의 성벽이 있는데 그 성벽이 왜 있느냐를 생각해 보면 경쟁을 안 하기 때문"이라며 "각각의 유불리를 갖다가 따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한 청년 정치인 역시 "정치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선 기득권의 힘을 낮춰야 하는데 특정 대안에 꽂혀서 지금 세부적인 논의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외부 독립위원회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해야"

토론 의원들의 선거제 개편 논의가 ‘고양이에 생선 맡기기’라는 비판도 있다. ‘대회에 참여하는 선수가 직접 규칙을 수정하는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직접 선거제도 개편을 손 봐야하는 상황에서 새롭고 파격적인 대안은 나오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국회의원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외부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대안을 만들어 낸 뒤 국회에서 표결 절차를 진행해 다수결의 찬성을 받는 안을 최종 확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전원위원회는 유의미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전문가들이 모인 위원회를 꾸려 독자적으로 선거제도 개편안을 논의한 뒤 국회에는 표결절차만 맡기는 방법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해당사자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 규칙을 바꾼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스웨덴의 경우 외부 전문가들이 선거제도 개편위원회를 여는데 우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hwjin@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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