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마음 담은 글씨는 마음을 닮습니다
[금요칼럼] 마음 담은 글씨는 마음을 닮습니다
  • 신아일보
  • 승인 2023.08.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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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글씨연구소 황성일 대표

‘인사동시대’를 연 신아일보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매일 접하는 정치‧경제 이슈 주제에서 탈피, ‘문화콘텐츠’와 ‘경제산업’의 융합을 통한 유익하고도 혁신적인 칼럼 필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새로운 필진들은 △전통과 현대문화 산업융합 △K-문화와 패션 산업융합 △복합전시와 경제 산업융합 △노무와 고용 산업융합 △작가의 예술과 산업융합 △글로벌 환경 산업융합 등을 주제로 매주 금요일 인사동에 등단합니다. 이외 △푸드테크 △취업혁신 △여성기업이란 관심 주제로 양념이 버무려질 예정입니다.
한주가 마무리 되는 매주 금요일, 인사동을 걸으며 ‘문화와 산책하는’ 느낌으로 신아일보 ‘금요칼럼’를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첫 만남, 첫 사랑, 첫 경험. 설렘이 있는 건 다 처음이라고 생각했었다. 여행가기 전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 좋아하는 일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처음이 아니더라도 두근거림이 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문뜩 떠오르는 발상이 휘발돼 사라질까 두려워 벌떡 일어나 스케치를 한다. 이 순간을 놓칠까, 잊힐까 하는 걱정과 함께 설렘이 시작된다.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낚시를 가는 친구가 있다. 이른 새벽에 편의점 김밥 한 줄과 꽁꽁 언 생수 몇 병을 담아 차에 싣는다. 친구는 배를 한 척 갖고 있다. 바다에 나가기 전 시골 어딘가 세워 둔 배를 찾아 덮어놓은 비닐을 걷고 결박을 풀어 차 뒤에 매달고 한참을 달려 서해 어느 해안가에 띄운다. 낚시장비로 가득한 차 안에서 숙련된 솜씨로 채비를 한다. 한나절을 물고기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에는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많은 뒷처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에 따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에 서로를 이해한다. 한밤중에 화선지를 펼치는 일이, 먹을 갈아 붓을 드는 일이, 다가올 기쁨에 비하면 한낱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글씨는 오감을 통해 얻은 것(input)을 뇌와 가슴의 합작으로 붓을 통해 표현(output)된다. ‘간장’은 간장을 찍어 쓰고, ‘흙’은 흙을 개어 쓰고, ‘기쁨’을 기쁨으로, ‘슬픔’을 슬픔 가득한 마음으로 써야 간장이 되고 흙이 되고 기쁨과 슬픔이 가득한 글씨가 된다. 마음 담은 글씨는 마음을 닮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다르게 받아들일까 봐 자신 있게 표현하지 못했던 그 마음을 손편지에 담자. 마음 가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잘못 쓴 글자도 새로 쓰는 일 없이 무심히 두 줄 긋고 다시 쓴다. 그 또한 나의 마음이니까. 자신의 글씨가 아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쓰는 글은 혹여 상대가 오해할까 염려스러워 ‘ㅎㅎ’, ‘ㅠㅠ’ 등의 이모티콘을 사이사이 넣곤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간 손글씨는 이미 내 마음의 IPO(Initial Public Offering·기업공개)나 다를 바가 없다.

눈물로 잉크가 번지는 일이 없어도 작년 가을 책갈피에 끼워 놓았던 낙엽을 붙이지 않아도 마음이 담긴 글씨는 받는 이의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한다. 오래 전 훈련소에서 받아 보았던 ‘사랑하는 내 아들아~’ 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손편지에 눈물짓던 ‘라떼’의 시절은 지났더라도 온라인으로 보내는 편지 대신 손편지를 써 보내는 것은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날 미리 주문해 두었던 멋진 수제케이크에 초를 꽂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정성스레 쓴 카드는 받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글씨도 따놓은 와인처럼 시간이 지나면 향이 달라진다. 지난 밤 욕취미취지간(欲醉未醉之間)에 써놓은 글이, 글씨가 아침에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것은 덧댐 없는 솔직한 내 마음을 누구에게 보이려 한 것이 아니라는 연유로 담백하게 남기 때문이다. 때론 어제의 글씨가 오늘도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을 곁에 두고 보았음에도 눈에 거슬림이 없다면 아마도 꽤 괜찮은 글씨일 것이다. 글씨 쓰는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품을 할 때 스케치도 습작도 절대 버리지 말라고. 우리의 눈에서 받아들인 정보는 당시 감정에 따라 달리 해석해 버리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연애편지를 몇 날 며칠을 읽고 또 읽었던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눈은 보지 못했던 새로움에 금세 호감을 주기도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도 여전히 설렘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눈이 아닌 마음이 허락한 것이다.

흙 속에 보이지 않지만 ‘풀씨’를 품고 있듯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글씨’를 세상에 내보내자. 분명 글‘씨’가 글‘꽃’을 피워낼 테니…

/황성일 먹글씨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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