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속보
백성은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백성은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 황미숙
  • 승인 2013.09.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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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집현전 학사,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성삼문(成三問) 은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근보(謹甫)이고 성승(成勝)의 아들이며 스스로 독서암(讀書庵)이라 하였다. 세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고 또 중시(重試, 3품 이하의 문관만이 응시하는 문과의 재시험)에 장원(壯元)으로 뽑혔다 세조가 왕위를 물려받자 성삼문이 예방승지가 되어 국새를 받들고 실성통곡하였다. 박팽년 등과 노산군(魯山君,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그의 부친 성승과 함께 사형을 받았다. 성근보(成勤甫)는 찬란하고 호방(豪放)하였으나 시(詩)는 잘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병자년의 변고에 성삼문이 대궐 마당에 끌려 나갔을 때 신숙주를 보고 말하기를, “처음 그대와 집현전에 같이 있었을 때 세종께서 매일 왕손(단종)을 안고 집현전에 나와 산보를 즐기시면서 여러 학사들을 보고, ‘내가 죽은 뒤에 경들은 모름지기 이 애를 생각하라.’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그대 혼자 잊어버렸느냐?” 하였다. 다시 문초할 때 임금이 신숙주를 피하게 하였다. 강희안(姜希顔)이 공술(拱述)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자복하지 않으니 임금이 묻기를, “강희안과 함께 모의하였느냐?”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정말 알지 못하오. 나으리[進賜]가 명사(名士)를 다 죽이니 이 사람은 남겨두었다 쓰는 것이 옳으리다. 정말 훌륭한 선비요.” 하여, 강희안이 이로 말미암아 화를 면하였다. 성삼문에게 형틀을 씌워 뜰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임금이 친히 심문하기를, “너희들의 이번 일은 무슨 일인가? 무엇 때문에 나를 배반하는가?” 하니, 성삼문이 소리 지르기를,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는 거요. 천하에 어찌 자기 임금과 자신의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소. 내 마음은 나라가 다 아는데 나으리는 무엇이 이상하여 묻는 거요? 나으리가 남의 나라를 뺏앗아갔소. 나는 남의 신하가 되어 군주가 폐위당하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그러는 거요. 나으리가 평소에 걸핏하면 주공(周公: 주(周) 나라 성왕(成王)의 숙부로 어린 성왕을 끝까지 보좌했다)을 자칭하는데 주공도 이런 일이 있었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태양이 둘이 없고 백성은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하니, 세조가 발을 구르며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처음 위를 물려받을 때는 무엇 때문에 말리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의지하다가 지금에 와서 나를 배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내가 처음 금지시킬 수 없었던 것은 형세상 그리하였소. 나는 기왕에 나아가서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을 알고 물러나 죽음이 있을 뿐인 것을 알았으나 헛되이 죽는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기 때문에 오늘이 있기를 기다려 일의 결과를 노렸던 것이오.”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너는 신(臣)이라 하지도 않고 나를 나으리라 하는데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않았느냐? 녹을 먹고 배반하는 것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다. 너를 병방 승지에서 예방 승지로 바꾼 것은 그 일을 잘하라고 한 것인데, 말은 상왕(上王)을 복위시키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네가 하려는 것이다.”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상왕이 계시는데 나으리가 어찌 나를 신하라 할 수 있소. 나는 사실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않았소. 만약 믿어지지 않으면 나의 가산(家産)을 몰수하여 계산해 보시구려. 나으리의 말씀은 모두 허망된 것으로 쓸데가 없소.” 하니, 세조가 크게 노하여 무사를 시켜 달군 쇠로 그의 다리를 찌르라고 하였다. 그러나 팔이 끊어져도 굴복하지 않고, 천천히, “나으리의 형벌이 참혹하구려.” 하고, 안색을 변하지 않으면서 쇠가 식자 말하기를, “다시 달구어 오너라.” 하니 또 팔을 끊었다. 부친 성승(成勝)과 동생 삼고(三顧)ㆍ삼성(三省)과 함께 죽었다. 이 사건으로 성삼문의 집안은 멸족의 비운을 겪는다.
성삼문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절명시(絶命詩)는 지금도 숱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북소리 둥둥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고(擊鼓催人命),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해는 벌써 지는구나(回首日欲斜), 황천에는 쉬어갈 주막조차 없다는데(黃泉無客店),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거나(今夜宿誰家).”

이승과 저승이 대문 밖이라지만 성삼문의 시에서는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엄함이 가득하다. 저승세계가 발치에 놓였듯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정절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도 먼 전설이리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위를 맴돌며 썩은 고기라도 차지하는 자들은 오히려 줘도 먹지 못한다며 냉소한다. 오늘은 온탕 내일은 냉탕 오고가며 자리 차지에 열심이다. 그러나 그조차 능력이라며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서지 못하는 노둔한 자신은 ‘신포도’라며 돌아서는 여우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방법으로 노력도 해보지 않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물러서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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