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은행 '상고 신화'…고졸 출신 임원 급감
사라지는 은행 '상고 신화'…고졸 출신 임원 급감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3.06.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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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마지막 세대가 명맥…외환위기 이후 대졸자 중심 채용
(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은행권의 ‘상고 신화’가 저물고 있다. 은행원의 ‘별’로 통하는 상무급 이상 임원진에서 상고·공고 출신 인물은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주요 은행과 금융지주의 현직 최고경영자(CEO) 중에는 고졸 출신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만, 이들이 상고 신화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말 기준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시중은행의 상무급 이상 임원(사외이사 제외)은 총 111명이다. 이 가운데 상·공고 출신 인물은 7명(6.3%)에 불과하다.

4년 전인 2019년 1분기만 하더라도 4대 은행 전체 임원 101명 중 25.7%(26명)가 상·공고 출신 인사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줄어든 모습이다.

은행권은 고졸 신화가 가장 많은 화이트칼라 직업군으로 꼽힌다. 한때 덕수상고나 선린상고 등 명문 상고 출신들이 승승장구하며 금융계를 호령하기도 했다. 

현재도 은행권 현역 CEO 가운데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과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강신숙 Sh수협은행장 등 상고 출신으로 입행해 회장·행장까지 영전한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명성을 잇고 있다.

은행권에서 상고 출신들의 입지가 컸던 이유는 과거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권은 1970~1990년대 고졸 출신들에게 채용문을 열었다.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 등을 이유로 상고 등을 졸업 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은행으로 곧장 취업하는 인재들이 많았다.

이렇게 입행한 상고 출신 행원들은 능력 면에서 대졸 행원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남성 고졸 출신들은 입행 이후 1~2년 근무하다 군복무를 마치면 그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돼 승진 등에서 유리한 점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해당 시기에 입행한 이들은 내부경쟁을 뚫고 승진을 거듭하면서 다수가 요직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학업도 병행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통해 학사 이상의 학위를 얻으며 본인의 경력과 가치를 높인 경우도 다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채용 흐름은 급변했다. 구조 조정 한파가 불어 닥치며 2000년대 초반까지 채용문이 굳게 닫혔고, 이후 취업 시장에 대졸자들이 몰려들면서 고졸 출신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고졸 출신의 몫이었던 텔러(창구 전담 행원) 직군마저도 대졸자로 채워졌다.

현재 시중은행의 상고 출신 임원 대부분은 1960년대 중반 출생자들이며 1990년을 전후로 입행했다. 즉 상고 전성시대의 거의 마지막 세대며, 이들 이후로는 상고 신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는 셈이다.

은행별로 보면 현직 상고 출신 임원 7명 가운데 5명이 우리은행 재직자다. 이중 고정현 IT그룹 부행장과 조병열 금융소비자그룹 부행장보가 덕수상고 동문이다. 성윤제 여신지원그룹 부행장보는 강경상고를 나왔다. 

송현주 자산관리그룹 부행장보와 기동호 IB그룹 부행장보는 각각 부산여상, 광주상고를 졸업했다.

KB국민은행에서는 강순배 CIB고객그룹 부행장이 광주상고 출신이며, 신한은행은 서울여상을 졸업한 박현주 소비자보호그룹장이 상고 신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은행은 상고 출신 임원이 한 명도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승진은 학벌보다는 성과가 훨씬 중요하다”며 “상고 출신 임원이 줄어든 것은 은행의 채용 구조가 과거 시대상에서 바뀐 영향”이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