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동맹 흔들려는 행위 저항 받을 것… 청사 보안 완벽"
野 "동맹 핵심 가치는 상호존중" "주권 심대하게 침해한 사태"
윤석열 대통령의 이달 말 국빈 방미를 앞두고 미국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우리나라 외교 컨트롤타워의 논의 내용을 도·감청해 온 정황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일단 대통령실은 신중한 분위기 속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8일(현지 시각) 뉴욕 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와 관련해 미 CIA가 주요 동맹·우방국들을 도·감청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가 최근 SNS에 대량 유출됐다.
특히 유출된 문건에는 한국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였던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이 미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심한 대화도 그대로 포함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원칙을 스스로 깨고 미국을 통해 포탄을 ‘우회 지원’하는 문제를 내부적으로 논의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특히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대화 수집 장소가 국내로 보인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 영토 내에서의 불법 감청은 '주권 침해'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확정사실이 아니다"며 "미 국방부도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한 상황이고, 사실관계 파악이 가장 우선돼야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또 이 관계자는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자료 대부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내용"이라면서 "미국에서는 유출자료 일부가 수정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특정 세력의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양국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한 경우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야권은 공세를 퍼부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든 내용이 명확한 건 아니지만 심각하다"면서 "동맹의 핵심 가치는 상호존중이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일국의 대통령실이 도청에 뚫린다는 것도 황당무계하지만 동맹국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한단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객관적 내용을 정확히 확인해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사실이라면 양국 신뢰를 정면으로 깨트리는 주권 침해이자 외교 반칙”이라며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남의 다리 긁는 듯한 한가한 소리만 내뱉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즉각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기밀 문건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요구하고 파악해서 우리 국민께 한 점 숨김없이 명명백백히 밝히기 바란다”며 “미국 정부도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국민과 정부에 정중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확실히 약속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보안 사고도 충격적이지만 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며 “강력한 항의, 책임자 색출 처벌, 재발방지대책 같은 상식적 절차도 없다”고 질책했다. 이어 “이런 보안 사고는 대통령실 이전 때부터 우려되고 예상됐던 것”이라며 “가장 안전한 청와대 벙커를 버리고 졸속적 리모델링 공사를 했으니 예견된 보안참사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이날 상무위 회의에서 "미국의 불법 도·감청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심대하게 침해한 중대 사태"라며 "마땅히 우리 정부는 즉각 미국정부를 향해 이와 관련한 사실 규명과 사과,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주권침해 상황에 항의 한마디 못 하는 비굴한 태도로 호혜평등의 외교관계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 수 있겠느냐"며 "한미정상회담 성사에 목매고 미국에 한마디도 못 한 채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주권국가 대통령 자격상실이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로서는 이번 사태가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불과 2주 앞두고 터진 점이 부담이다.
국내 여론이 악화할 경우, 12년 만의 국빈 방미의 의미와 한미동맹 70주년, 나아가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동맹관계를 흔들려는 행위는 많은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4월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11일 3박 5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다. 미국 정보기관이 대통령실 안보실에 대한 도·감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 전달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해당 문건에 대한 유효성을 평가중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소셜미디어에서 떠도는 중인 민감하고 극비인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 촬영본의 유효성을 살펴보고 평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신아일보] 김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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