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먹고 금융위 뒷수습…고승범 규제포획 해결 당면
금감원 먹고 금융위 뒷수습…고승범 규제포획 해결 당면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1.08.3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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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문제의 처리가 금융위원회로 넘어갔다. (사진=신아일보DB)
DLF 문제의 처리가 금융위원회로 넘어갔다. (사진=신아일보DB)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이 31일부터 문재인 정부 세 번째 금융당국 수장으로서의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사모펀드 판매사 징계와 가계부채 관리, 가상자산거래소 등록 등 무거운 현안에 어느 때보다 금융당국으로 이목이 쏠려있는 가운데 금융정책 전문가로 통하는 고 위원장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1962년생인 그는 제28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이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요직을 거쳤고 오랜 기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몸담아, 금융정책과 거시경제 분야 내막을 속속들이 안다는 평가다.

그런 그이기에, 라임 및 해외금리 연계 펀드(DLF) 등 제재 수위를 감경처리 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DLF 관련 행정소송 1심에서 금융감독원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들면서 공이 신임 금융위원장으로 넘어간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임원을 제재할 때 경징계인 주의와 주의적경고는 금감원장이,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 등 중징계는 금융위가 각각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게 금융권 설명이다. 은행장 등은 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전하는 예가 적지 않아, 결국 금감원이 포를 뜬 것을 금융위가 회로 꾸며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설명도 있다. 

결국 달갑잖은 뒷처리를 맡은 것이기도 하고,칼자루를 금융위가 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 위원장의 전임자(은성수 전 금융위원장)는 판결과 달리 징계를 원안대로 확정하면 후폭풍이 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 판결을 지켜보고 처리하겠다고 시간을 미뤄 뒀었다. 판결을 이유로 각 CEO의 징계 수위를 낮추면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일찍부터 나돌았었다.

고 위원장도 인사 청문회에서 관련 질의에 "판결문 내용을 자세히 보고, 다른 사건도 면밀히 검토해보며 제도를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일단 즉답은 피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가 지적한 내용이 회자되면서 상황이 모호해지고 있다. 해묵은 문제에 새로 등장한 고 위원장이 애매하게 책임을 떠안고 문제를 개혁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금융기관이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채 그 실적만을 좇거나 경영진이 그 욕망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그 '탐욕'에 제동을 걸어 줄 수 있는 실효적인 자율적 내부통제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러한 '탐욕'에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못한 원인과 관련, 재판부는 금융 당국자들까지도 흑막으로 함께 비판했다. 재판부는 "금융기관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의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즉 그 퇴임 후 취업 문제와 연관되어 사회적 문제로 꾸준히 지적됐다"고 짚었다. 즉, 퇴직 금융관료, 속칭 '모피아'를 통한 결탁 관행을 꼬집었다. 

지난해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4개년간 금융당국 재취업 자료를 보면 문제는 극명하다. 퇴직자 10명 8명은 금융권에서 다시 일자리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공정위 퇴직자 10명 중 3명은 대형 로펌으로 향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임원으로 가는 퇴직자도 상당수였다. 금융권과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막강한 조사권을 행사하는 시장감독기관 출신들이 '바람막이 전관'역을 즐긴다는 점을 드러낸 실증 자료다. 

취업 심사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의원 측 자료만 해도, 심사를 신청한 퇴직자 73명 중 70명이 재취업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금감원은 심사를 신청한 48명 전원이 재취업 승인 처분을 받았다. 금융위 퇴직자는 14명 중 12명이 심사를 통과해 유관 업체에 재취업을 했다. 금감원과 금융위만 놓고보면, 재취업에 성공한 60명 중 제1·2금융권이나 유관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이 47명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이라고 업계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피부에 와닿는 규제 담당자로 금융권 사람들 눈에는 비치는 데다 조직이 방대하다. 금융위가 사실상 업무와 정책의 중심이지만, 일선에서 느껴지는 권위나 위상에선 금감원의 느낌에 가져다 댈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의 전관 취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신임 금융위원장 취임과 DLF 징계 조정 현안을 계기로 이에 메스를 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신아일보DB)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의 전관 취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신임 금융위원장 취임과 DLF 징계 조정 현안을 계기로 이에 메스를 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신아일보DB)

그래서 지난해 초 라임 파장이 한창 클 때, 한 은행은 지난해 2월 이사회를 열고 신임 감사로 금감원 국장급을 지낸 A씨를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A씨 영입 논의 전 이 곳 감사를 지낸 B씨는 은행권 유일의 '비(非) 금감원 출신 감사'로 이목을 끈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사태가 벌어지자 믿을 건 전관이라는 소리가 대두돼 이 역사적 의미를 삼켜 버렸다.

다시 판결문으로 돌아가자. 재판부는 그래서 내부통제 실패 등 탐욕에 대한 브레이크와 패널티를 어떻게든 줘야 한다는 '견강부회' 그 자체의 선의는 모른 척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법관으로서 직업적 관점에서 이를 허용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재판부는 "금융사지배구조법령이 유독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가 '실효성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이라는 문언을 명확하게 추가한 그 규범적 함의를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다"고 짚었다. 이는 일종의 당부로 '치환'된다.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 (사진=하나은행)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 (사진=한국은행)

주로 금감원이 규제포섭의 열매를 주워먹고, 뒷처리 오물이나 책임만 금융위원장에게 튀는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는 입법적 사안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을 다시 합치느냐 등 구조적 현안이기도 하다. 영국 사례에서 보듯 합치는 외에 더 쪼개는 방안도 있다. 2013년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해체되고 신설기관들이 업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즉, 기존 금융감독 기관인 FSA의 기능은 금융정책위원회(FPC: 거시 건전성 감독)와 금융보호감독청(FCA: 영업행위 감독, 소비자 관련 행위 규제), 은행규제청(PRA: 미시 건전성 감독) 등 3개 기관으로 분리돼 전문화된 체계를 갖췄다.

정답이 하나인 것만도 아니고, 어떤 모델로 갈지 치열한 고심이 필요하다. 고 위원장이 임기 말 이를 다 시도하거나 화두를 줄 수는 없으나, 그의 이력상 적어도 이번에 징계안 뒷수습을 하면서 기술적인 잽, 그러나 실질은 금감원에 묵직한 견제구를 하나쯤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금융위 대 금감원의 힘겨루기가아니고, 집권 말 시기에 어려운 자리를 맡은 오피니언 리더의 의미있는 발자국 남기기가 관전 포인트다. 

[신아일보] 임혜현 기자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