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1호는 금감원 뒷처리? DLF 암초 만난 고승범號
업무 1호는 금감원 뒷처리? DLF 암초 만난 고승범號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1.08.3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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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후 판결로 미뤄둔 상황, 어떤 식으로든 결론 불가피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 (사진=한국은행)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 (사진=한국은행)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이제 정식으로 업무에 나선다. 은성수 전 위원장이 이임식을 연 데 이어, 청와대는 30일 저녁 고 위원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31일 취임식 등으로 정권 말 금융정책 콘트롤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처리해 나가게 된다. 

명문 학교 출신(경복고, 서울대)에 행정고시·미국 박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 정책 메인스트림에 걸맞은 모든 이력과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그이지만, 어려운 매듭이 임무 초반부터 들이닥쳐 있다. 바로 지난 27일 나온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1심 판결과 그 이후 징계 수습 이슈다. 이 행정소송(1심)에서 금융감독원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들면서 공이 신임 금융위원장으로 넘어갔다.

공이 넘어간 이유는 이렇다. 은행계에 따르면, 자본시장 및 지배구조 법령 위반으로 임원을 징계할 때는 경징계인 주의·주의적경고는 금감원장이, 중징계인 해임권고·직무정지는 금융위가 조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문책경고는 개별 금융법령에 따라 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 임원에 대해서는 금감원장이 발령한다. 다만 금융투자·금융지주 임원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행사하는 등 구조가 복잡하게 돼 있다. 여기에 시중은행장의 경우 이후 금융지주에서 요직을 맡기 쉬워 중첩적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

현재 라임과 DLF 등 현안으로 제재 그물에 옭매인 금융권 오피니언 리더들이 적지 않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라임펀드 사태 제재심에서도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현금융투자협회장)와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에겐 '직무정지'를, 박정림 KB증권 대표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겐 '문책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손태승 회장 행정소송 1심 이후로 판단을 유보해 뒀다. 사모펀드 사태를 둘러싼 금감원의 중징계 처분에 대한 금융권의 불만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고, 법원을 존중해 판결을 지켜보고 나서 징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도 있었다. 부수적으로는, 은 전 위원장이 오랜 공직 생활에 지쳐 자리를 떠난 점을 고려하면, 이 사안을 의욕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판결 이후로 미룬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금융위가 어느 쪽으로든 법원과 뜻을 같이 해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찍이 돌았다. 판결과 달리 징계를 원안대로 확정하면 후폭풍이 일 수 있으니 각 CEO의 징계 수위를 낮출 것이란 분석으로 대단히 신빙성 있게 통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심 판결 내용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달갑잖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후문이 나온다. 재판부가 해당 금융수장의 처벌에 대해서는 근거 부족을 명확히 밝혔지만 잘못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고 명토박은 데다, 금융기관 내부 통제는 물론 당국자들의 처신 문제까지도 지적했기 때문이다.

위 1심 행정소송 판결에서 재판부는 "국내 금융기관에 내부통제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진단하면서 "금융기관이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채 그 실적만을 좇거나 경영진이 그 욕망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그 '탐욕'에 제동을 걸어 줄 수 있는 실효적인 자율적 내부통제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 '탐욕' 문제에 금융 당국자들까지도 함께 거론됐다. 질타 대상으로 도마에 올랐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흑막' 즉 배후의 더 큰 수혜자 내지 문제로까지 해석되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못한 원인과 관련, 재판부는 "금융기관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의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문제가 그 퇴임 후 취업 문제와 연관되어 사회적 문제로 꾸준히 지적됐다"고 꼬집었다. 규제 포획이란 규제당국이 규제 대상에게 포섭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깔끔하게 수습 처리하는 것이 KS 출신(경기고 외에 경북,경복 등까지도 이 속어에 같이 넣는 예도 없지 않다) 재무통 관료의 전형적인 업무 스타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 말 영이 서지 않는 상황에 금융기관들을 방목하다시피 풀어주기도 어렵다. 가계 신용대출 옥죄기 등 당장 함께 의견을 조율하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중앙은행과만 대화하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은 전 위원장과의 대담에서 대환대출 플랫폼 등에서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내놓고 난색을 표했던 예를 생각하면, 군기잡기까지는 몰라도 적당한 긴장관계 유지가 있어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보통 금감원이 나서서 현안마다 구두지도를 하는 선에서 이끌고 있지만, 금융위 고심이 없을 수 없다. DLF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징계까지도 걸려 있고 배경을 살필 일도 적지 않아 '빙산의 일각' 소리가 나온다. 

따라서 금융위에 판단이 관건이다. 징계가 최종 확정되려면 정례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늦어도 9월 중순엔 결론이 날 것이란 당초 관측이 다소 고심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쪽으로 소리가 뒤섞이고 있다. 무게는 여전히 9월 중순 순리대로 처리 방향에 실리고 있지만 변수가 대두된 셈이다.

고 위원장은 앞서 인사 청문회에서 관련 질의에 "판결문 내용을 자세히 보고, 다른 사건도 면밀히 검토해보며 제도를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출범 초부터 만난 빙산을, 수면 아래 80% 크기를 어떻게 가늠해 가며 피해 나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