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휘는 국책은행] ① 코로나19로 넘치는 업무량…인력은 제자리
[허리 휘는 국책은행] ① 코로나19로 넘치는 업무량…인력은 제자리
  • 홍민영 기자·강은영 기자
  • 승인 2021.03.16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년 산은·수은·기은 목표 대비 자금 지원 실적 급증
한정된 정원으로 업무 돌려막기…정신·신체적 고통↑
"증원 유연화 필요" 현장 목소리에 기재부는 '난색'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사진=신아일보 DB)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사진=신아일보 DB)

작년 코로나19가 나라 경제를 강타하자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종 금융 지원책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국책은행 직원들의 업무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선 현장에서는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가 정하는 총원을 기준으로 인력 운용이 이뤄지는 국책은행 특성상 업무가 급증했다고 직원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국책은행 직원들이 처한 상황을 깊게 들여다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코로나19로 금융 지원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국책은행들이 업무 과중과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한정된 정원으로 업무 돌려막기까지 감수해야 하는 국책은행 직원들은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호소했다. 현장에서는 증원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기재부는 난색을 표했다.  

◇ 수면장애에 안면마비까지

16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해 총 91조1000억원 규모 금융 지원을 실행했다.

코로나19 대응 및 한국판 뉴딜 활성화 정책에 따라 금융 지원 수요가 증가하면서 목표액 66조원 대비 25조1000억원이나 많은 지원이 이뤄졌다. 2019년 지원 실적 72조9000억원보다는 25.0% 증가한 수준이다. 올해 자금 지원 목표액은 68조원으로 작년 목표액보다 2조원 늘었다.

금융 지원 규모가 급증하면서 산은 내부에서는 본점뿐만 아니라 지점에서의 업무 과중이 심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산은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영업점을 줄이고 있는데,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으로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영업점 업무량도 급증한 상황이다.  

산은 노동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으로 증권·회사채 시장 등에서의 자금 조달이 경색되면서 기간산업안정기금과 같은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많이 늘렸다"며 "인력을 따로 충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는 주요 부서에서 인력을 차출해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도 업무 과중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수은의 작년 자금 공급 실적은 73조3000억원으로, 전년 지원 실적 59조9000억원 대비 22.3% 많다. 올해 지원 목표액은 68조원으로 작년보다 4조원이 늘었다. 수은 직원들은 기존에 운영 중이었던 프로젝트 파이낸싱(PF)·기업금융 업무와 함께 코로나19 관련 대출 한도 증액과 만기 연장, 신규 지원 등으로 업무 부담이 커졌다고 말한다.

기업은행은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본 중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규모를 크게 늘렸다. 작년 중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저금리로 공급한 중소상공인대출 실적은 7조8000억원을 기록했고, 중소기업 자금 유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중소기업대출 10조원 등을 더해 총 18조원 가까이 자금을 지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중소기업 대출 공급을 크게 늘린 기업은행에 새롭게 유입된 고객은 26만7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신용대출 건전성 강화를 위해 신용보증재단과 신용보증기금 등 정부 보증기관에서 발급하는 보증서 대출 지원도 기업은행의 업무량을 늘렸다. 과부하가 걸린 보증기관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은행 직원들은 자금 공급을 위한 대출 업무와 함께 보증기관 업무까지 감당해야 했다.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사진=신아일보 DB)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사진=신아일보 DB)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책은행 직원들의 업무 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매년 과도해지고 있다"며 "지점 통폐합은 계속되면서 인원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는 늘어났고, 정책형 뉴딜 펀드·ESG 등 새로운 프로젝트와 관련한 부서가 신설되면서 개개인이 새로 맡는 업무도 늘어나 실무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은 노조 관계자도 "일할 시간이 부족해 근무 시간에는 화장실도 못 가고, 집에 가서도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작년 업무 과다로 수면장애, 안면마비 등 스트레스성 질환자가 대거 발생했고, 몇 명은 암에 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업점 업무가 많아지면서 본점 직원들이 현장에 파견되는 일도 있다.

기은 노조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 코로나 지원을 위한 업무량이 늘면서 본점 직원들이 TF(테스크 포스)를 구성해서 영업점에 나가고 있다"며 "사실상 본부 업무는 멈춘 상태에서 현장의 과도한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그런데도 업무량은 줄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서울시 중구 기업은행 본점. (사진=신아일보DB)
서울시 중구 기업은행 본점. (사진=신아일보DB)

◇ 당면 과제 해결·경쟁력 강화 '과부하'

과다 업무에 시달리는 국책은행들은 증원에 목말라 하고 있다. 정부가 정한 총원 규정이 있더라도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인력 충원에 유연하게 접근해 달라는 요구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내후년 정년퇴직 인원이 15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행원 교육에 최소 3~4년이 걸리는 만큼 미리 신입 행원을 채용해 업무 적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정원을 다소 초과하더라도 현재 우선적인 증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또, 수은 노조 관계자는 "현재 만성적인 인력 부족 상태를 겪고 있는 만큼, 정기 증원 이외에도 인력의 수시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눈 앞에 닥친 업무 과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은행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인력 증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기은 노조 관계자는 "일정한 수익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신규 인력 채용을 통해 조직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인력 운용이나 증원 등은 기관 자율에 맡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국책은행 업무 현장에서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책은행 인력 확대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는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로 일부 공공기관의 추가적인 증원이나 인력 운용을 유동적으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전 부처 산하기관을 총괄하는 만큼, 일부 공공기관에 대한 증원이나 인력 운용을 유연화 할 경우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 있다"며 "또, 국민 정서상 공공기관의 정원을 늘린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어서 실무진들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hong9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