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초등생 뼈 발견하고 모른척… 경찰 사체은닉 '논란'
살해 초등생 뼈 발견하고 모른척… 경찰 사체은닉 '논란'
  • 이상명 기자
  • 승인 2019.12.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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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사건 당시 경찰, 시신 유기하고 '단순 실종' 처리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이춘재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수사상황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이춘재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수사상황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할 경찰 수사관이 억울하게 숨을 거둔 살해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로 입건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관련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경찰은 누구보다도 사회적 모범이 돼야 할 대상임에도 수사관이 피해자의 시신을 은닉했다는 사실에서 무엇보다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더욱이 이 사건은 1980년대 말 화성에서 잇따라 부녀자가 성폭행 후 살해돼 사회적 불안을 던진 상황에서 같은 지역 초등생이 실종된 사건으로 더욱 충격을 안기고 있다. 

당시 경찰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체포 및 구타와 가혹행위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은 있지만 이처럼 피해자의 사체를 숨기는 등 경찰이 직접 증거인멸에 나선 경우는 처음이다. 

17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담당 형사계장 A씨와 형사 B씨를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1989년 7월7일 낮 12시30분께 화성 태안읍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2년생인 C양(당시 8세)이 하교 중 실종된 사건과 관련해서 C양의 시신을 은닉하고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또한 C양의 유류품 발견 신고일인 같은해 12월21일부터 C양의 아버지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12월25일 사이에 C양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시신을 은닉해 사건을 은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앞서 수사본부는 이춘재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춘재가 C양을 성폭행 후 살해했다고 자백하며 범행 당시 C양의 손목을 줄넘기로 결박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지난 30년간 미제로 남았던 이번 사건에 대해 실마리가 열리며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C양이 거주했던 지역의 주민으로부터 “1989년 초겨울 A씨(형사계장)와 야산 수색 중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진술을 확보, 수사본부는 이와 같은 진술을 토대로 당시 A씨 등이 (화성연쇄살인사건 등 격무로 인해)안일한 사건 처리를 한 것만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조사해왔다.

또한 수사본부는 당시 A씨 등이 C양의 아버지와 사촌 언니를 참고인 조사하는 과정에서 C 양의 줄넘기에 대해 질문한 것을 확인, 사건 발생 5개월 뒤에는 C양의 유류품이 발견됐음에도 알리지 않은 사실 등으로 볼 때 A씨 등에 대한 혐의가 상당하다고 판단해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 사건은 C양의 아버지가 두 차례에 걸쳐 수사 요청을 했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요청을 외면하고 사건을 단순 실종 처리했다고 알려졌다. 

10세 이하의 어린 여자 초등학생을 성폭행 후 살해한 사건을 맡은 경찰관이 피해자 부모의 눈물어린 호소를 직접 경험하고도 피해를 입은 여자 어린이의 사체를 직접 은닉하고 사건을 은폐·축소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A씨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춘재 사건과 관련해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 의혹은 8차 사건 재심청구인인 Y 씨로부터 제기되는 등 죄 없이 불법 체포되거나 고문 등을 겪은 여러 피해자의 진술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경찰이 직분을 망각하고 피해자의 사체를 은닉한 사례는 처음이다. 

수사본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1일~9일까지 이춘재가 자백한 바 있는 C양 시신 유기 장소 인근으로 알려진 화성시의 한 공원에 대해 대대적인 유골 수색 작업을 펼쳤다. 

40대 중년에서 70대 후반의 노인이 된 C양 아버지는 수색 현장을 찾아 "자식을 잃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원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수사본부의 수사 내용대로 A씨 등의 당시 수사 경찰관이 피해 어린이의 시신을 유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수십명의 인원을 동원했던 유골 수색 작업은 헛수고가 돼버렸다. 또한 피해 유족을 다시 한 번 울린 셈이다. 

그러나 A씨 등이 C양의 시신을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등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사건 현장 인근이 토지 개발 등으로 깎여 나가는 등 크게 바뀌어 추가 유골 수색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수사는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요청에도 어린 자녀의 생사여부를 단순히 가출·실종이라 처리했던 경찰.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경찰관의 도 넘은 행태에 많은 이가 분노하고 있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