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린 靑… 매화꽃 든 국민대표 74명 필두 속속 입장
이전 공약 매번 실패… 일부 개방했다 '김신조' 이후 꽁꽁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으로, 대통령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됐다. 이에 따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4년 간 '권력의 중심'이었던 '청와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섰다.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은 10일 오전 11시 청와대 정문 개문 행사를 열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전면 개방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청와대 개방 장면이 생중계됐다.
청와대의 이전 이름은 '경무대'다. 소실됐던 경복궁을 고종 5년(1868년) 재건한 뒤 청와대 자리에 조성한 후원 이름이다.
이후 청와대의 명칭을 처음 사용한 이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4·19혁명의 뜻을 반영해 독재를 연상시키는 경무대라는 이름을 폐기하고 '청와대'라고 했다.
정치적·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청와대 주소는 일제강점기부터 '광화문 1번지', '세종로 1번지', '청와대로 1번지' 등으로 통했다.
오늘날 청와대 모습이 갖춰진 것은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취임한 노태우 전 대통령 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사적 공간인 관저를 분리했고, 참모 업무 공간인 여민관과 기자실인 춘추관을 신축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옛 관저를 철거했다.
청와대 이전 공약은 대선마다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구중궁궐'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호·비용 등 문제로 이전은 번번히 무산됐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 등으로 집무실을 옮기려 했으나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청와대 개방 역시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 제한적이나마 추진을 해왔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때인 1955년 봄꽃철에 경내 일부를 시민들에게 공개한 것을 시작으로,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8년 1월21일 '김신조 사건'이 발생하기 전 매년 봄에는 경내 일부를 공개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청와대 개방은 중단됐고, 청와대 앞길과 북한산·북악산·인왕산이 통제됐다.
개방이 재개·확대된 시기는 민주화 이후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경내가 개방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인왕산과 청와대 앞길이 일부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단체에만 허용되던 경내 관람을 개인과 외국인에게까지 확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관과 녹지원까지 관람 범위를 넓혔고 북악산 일부도 다시 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앞길과 북악산을 사실상 전면 개방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인 10일 오전 11시 37분 청와대 정문이 활짝 열리고, 손에 매화꽃을 든 국민대표 74명을 필두로 사전 신청을 거쳐 당첨된 청와대 관람객들이 입장했다.
74명이 상징하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청와대가 74년 만에 개방된 점, 또 이들이 손에 쥔 매화는 봄이 가기 전에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는 대통령 약속이 실천됐음을 뜻한다. 74명에는 인간문화재와 서울시 문화해설사, 인근 학교 관계자들로 구성됐으며, 외국인도 일부 포함됐다.
청와대 경내 관람을 위한 시민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안에서는 줄타기, 농악, 퓨전음악 공연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