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대립 만연했던 과거 모습 탈피…러닝메이트 체제 변화
한때 갈등과 대립이 만연했던 국내 금융그룹의 지주 회장과 은행장 사이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융그룹의 1인자인 회장과 2인자인 은행장이 서로 견제·반목하느라 그룹 전체가 들썩이는 집안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둘의 관계는 경쟁보다 협력이, 앞으로의 경영 승계를 안배한 러닝메이트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대 국내 금융그룹은 회장과 행장의 갈등으로 내홍을 겪은 사례가 다수 있었다.
이는 회장과 행장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구도를 보인 것이 배경이다. 명목상으로는 회장이 행장보다 직급이 높은 상사지만, 당시 금융그룹 내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았던 만큼 은행장도 회장 못지않게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가령 2011년 이팔성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갈등이 있다. 두 사람은 그룹 계열사의 공통된 사업부문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매트릭스 체제’ 도입을 놓고 샅바 싸움을 벌였다.
이 체제는 은행 업무 중 개인영업과 기업영업, 투자은행(IB) 등 사업 부문별로 각각 대표임원을 두는 것이 골자였다. 이는 은행장의 권한 축소로 이어지는데, 이팔성 회장이 이를 독단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이에 이순우 행장이 임기 내내 강력하게 반발했고 긴 갈등 끝에 무산됐다.
2014년 벌어졌던 이른바 ‘KB사태’는 회장과 행장 사이 갈등의 정점을 보여준다. 전산시스템 교체 사업을 두고 임영록 당시 KB금융 회장과 이건우 국민은행장이 반목해 주도권 다툼을 벌인 사건으로, 은행장 사퇴와 회장 퇴출이라는, 두 최고경영자(CEO)가 함께 몰락한 초유의 결과를 남겼다.
내홍을 겪은 금융그룹은 회장과 행장을 한 사람에게 맡기며 내분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도 했다. KB금융의 경우 회장·행장 동반 퇴임 이후 선임된 윤종규 현 회장이 2017년까지 행장을 겸임했다. 우리금융 역시 이순우 행장이 회장으로 영전하면서도 행장직을 놓지 않고 두 직책의 업무를 같이 수행했다.
견원지간이었던 회장과 은행장의 관계 구도는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 바뀌는 모습이다. 은행장을 선임할 때 회장과 별다른 갈등 없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러닝메이트’ 인사를 뽑으면서다. 다시 말해 ‘회장 라인’을 은행장에 앉히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렇게 선임된 은행장이 강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부상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함영주 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다. 함 회장은 2015년 통합 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으로 오른 뒤 연임을 거치며 김정태 전 회장의 뒤를 이을 차기 회장 후보로 주목받았다. 법률 리스크로 인해 행장 3연임은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그룹 부회장직을 맡아 승승장구 했고 올해 회장으로 영전했다.
허인 현 KB금융 부회장도 비슷한 경우다. 윤종규 회장이 2017년 당시 회장과 행장직을 분리하면서 선임한 은행장이 허 부회장이다. 허 부회장은 4년간 윤 회장과 호흡을 맞추며 은행을 이끌었고, 그룹 부회장에 오른 현재는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은행 비중이 줄었고, 지배구조도 여러 차례 개편해 안정된 만큼 이전처럼 큰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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