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에세이 ‘타인을 듣는 시간’
[신간] 에세이 ‘타인을 듣는 시간’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1.12.13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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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공존, 포용, 다양성 같은 가치가 퇴행하는 때, ‘어떻게 들을지’에 관한 밀도 있는 성찰을 담고 있는 독서 에세이 ‘타인을 듣는 시간’이 출간됐다.

13일 출판사 반비에 따르면 ‘타인을 듣는 시간’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저자가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학교폭력 가해자 등 다양한 타인들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아가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전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인 동시에, 13편의 논픽션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맥락 을 기록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서평기다.

현대의 고전이 된 오웰의 르포부터 현지인의 삶으로 파고드는 여행기, 참사 피해자 및 유족의 삶과 투쟁의 기록, 구술생애사 작업,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는 글까지, 다채롭고 독특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또 이 책은 ‘잘 듣기 위해’ 타인들의 현장을 찾아가 온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며 자신의 지평을 넓혀 가는 특별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갈래의 글감을 긴밀하게 엮어 내는 글쓰기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태도나 재현 방식을 집요하게 고민하고 탐색하면서 차이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감각을 일깨운다.

‘타인을 듣는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쓸모는 다양한 논픽션(또는 논픽션의 속성을 지닌 책)의 매력과 의의를 새롭게 발견해 내는 데 있다.

저자는 논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이라는 간명한 문구로 정의한다. 그리고 ‘내 내면을 설명하는 언어’와 ‘내 바깥의 세계를 묘사하는 언어’의 차이를 짚으며, 바깥을 향하는 언어로 구성된 논픽션에서 깊이 있는 성찰을 건져 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논픽션들은 공통적으로 ‘차이’에 섬세한 언어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저자 김현우는 차이 나는 경험, ‘정상’에서 소외되어 온 정체성이 비로소 가시화되고, 그렇게 이해와 인정을 위한 초석이 마련될 수 있음을 밝힌다.

예컨대 숫자, ‘통계 단위’가 아닌 각자의 이름과 ‘느낌’을 가진 광부 개개인에 주목하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집’이나 ‘자유’ 같은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과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나아가 이런 사례를 통해 차이에 대한 섬세한 인식 없이 설익게 ‘우리’를 명명하고 ‘연대’를 꺼낼 때, 외려 서로의 다름을 지워 버리는 결과가 벌어진다는 것을 짚어 낸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저자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타인에게 질문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윤리를 길어 올린다.

타인을 듣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이해의 영역과 지평이 넓어지고 결국 개개인이 성장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삶’의 테두리를 깨고 나올 때 타인과 내가 서로의 세계에서 새로 ‘탄생’하는 선물 같은 순간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말 걺으로써 생겨나는 청자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듣기의 윤리학을 배우고자 할 때, 타자에 대한 존중과 ‘우리’의 공존이라는 과제가 달성될 수 있고,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성숙시킬 수 있다고. 이 책처럼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묻는 작업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한편, 저자 김현우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2002년 EBS 입사 후 EBS 다큐프라임 ‘성장통’, ‘생명, 40억 년의 비밀’, ‘김연수의 열하일기’,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 ‘부모와 다른 아이들’ 등을 연출했다.

kny0621@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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