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냉정과 열정사이…금융맨들의 연탄 배달기
[르포] 냉정과 열정사이…금융맨들의 연탄 배달기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1.11.2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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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합동 사랑의 연탄나눔' 올해로 2번째 행사 맞아
타업권에도 귀감…선배 금융인들 솔선수범 배우고 소통

"제 고향이 계룡산 시골(공주)인데, 이렇게 연탄을 나르며 주변 풍경을 보니, 새마을 운동 때 비로소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함석지붕으로 개량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장경호 코스닥협회 회장)

"아, 힘들지 않습니다. 평소 근력운동을 따로 하지 않지만 늘 걷기운동을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연탄배달봉사 소식에) 흔쾌히 나섰습니다."(김창희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국장)

서울 도봉구 일대, 금융권 인사들이 저소득 가구들을 두루 누비면서 연탄을 날랐다. 연탄을 옮기고 또 차곡차곡 쌓으면서 서로 다른 조끼나 바람막이를 입은 타금융기관 직원들과 이심전심 협업을 해 나갔다. 

줄지어 연탄을 나르는 모습. (사진=임혜현 기자)
연탄 운반 와중의 병목 현상. (사진=임혜현 기자)

때로는 아직도 새마을 운동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낡은 주택환경이 그대로인 동네 사정을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좁은 골목에서 지게를 진 이들끼리 마주치면 병목 현상이 빚어져 멈춰 서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이 주축이 돼 펼치고 있는 '금융권 합동 사랑의 연탄나눔 행사'의 이야기다. 금년으로 두번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아직 연탄 난방에 의존하는 저소득층, 홀몸노인,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마련됐다. 금융 각 영역(증권, 은행, 보험, 카드)을 망라하는 기라성 같은 단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은다. 

올해에는 △금감원을 비롯해 △서민금융진흥원 △신용회복위원회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코스닥협회 △금융산업공익재단 △카카오뱅크 등 10개 기관에서 참여, 연탄 약 20만장(1.6억원)을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기부했다.

아울러 배달이 어려운 점을 고려, 이들 기관 임직원 등 99명이 11월19일 도봉구 oo동 일원 독거노인 및 저소득층 23가구에 연탄 4600장을 직접 날라 주기도 했다.

(사진 왼쪽부터)서영종 손해보험협회 상무,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 장경호 코스닥협회 회장, 정은보 금융감독원 원장,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 목사, 지역주민,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이호형 은행연합회 전무이사, 김광옥 카카오뱅크 부대표, 김인호 생명보험협회 상무, 김창희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국장. (사진=임혜현 기자)
(사진 왼쪽부터)서영종 손해보험협회 상무,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 장경호 코스닥협회 회장, 정은보 금융감독원 원장,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 목사, 지역주민,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이호형 은행연합회 전무이사, 김광옥 카카오뱅크 부대표, 김인호 생명보험협회 상무, 김창희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국장. (사진=임혜현 기자)

◇"금융인들의 손은 하얗지 않았다" 검은 온정 묻혀 장당, 3.65Kg, 100원꼴 손품 

지난해 첫 금융권 합동 사랑의 연탄나눔에는 총 8개 기관이 참여해 비슷한 규모의 연탄을 기부했고, 금년과 마찬가지로 11월 중 하루를 골라 직접 연탄 배달하기도 했다. 이때에는 직접 배달장소를 노량진 일대로 정했고 1950장을 날랐다. 

1년만에 두 개 기관이 더 참여하고 일손이 늘어난 만큼, 직접 배당 물량도 한층 강화해 떠들썩한 축제처럼 더 발전된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됐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목사)는 "연탄 기부도 많이 줄었지만 정작 어려운 이들에게 배달도 아쉽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저 언덕 밑에서 3.65Kg짜리 연탄 한 장이 800원인데, 동네 위까지 배달을 하려면 배달료가 100원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렇게 줄을 지어 옮겨 줄 때마다 장당 100원씩 별도의 기부를 또 하는 셈"이라면서 "저소득 취약계층의 간절한 어려움에 금융권이 발 벗고 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연탄 기부에 어려움이 많은데 연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허 목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금융기관 합동 행사인 만큼 참여한 이들도 모두 금융권 임직원들. 고액 연봉의 전문적 분위기에, 사무실에 앉아 편하게 일할 것 같은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다.

그 굴레를 깨고 나와 참석한 봉사 인원이 100명선에 달한다는 점은 한국 금융권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갖는 마음의 온기를 방증하는 실증적 자료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장당 100원의 배달료를 절약해 주기 위해 열 명 내지 스무 명씩 '인간 컨베이어 벨트'를 연결하고 다른 금융기관 직원들과 어깨를 맞부딪히며 줄을 서고 지게를 짊어진다. 선의의 경쟁(?) 심리로 더 많이 짊어지겠다고 같은 기관 혹은 다른 곳 사람들과 경쟁과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IMF 이후의 금융권 재편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권엔 샤프하고 때로는 비정한 이미지가 덧칠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리나라 금융권은 나라 경제를 설계하고 실제로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동맥처럼 혹은 실핏줄처럼 자금의 흐름 역할을 뒷받침해 왔다.

푼푼이 저금한 돈들을 모아 국가의 발전 밑천이 될 수 있도록 자금을 운전하고(은행) 그런 쓰임새에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당국). 한편, 기업하는 이들을 위해 시중의 자금을 연결, 조달하고(증시) 경제 참여자들이 걱정없이 일에 매달릴 수 있도록 보장성 자산을 구축(생보, 손보)해 주었다. 나라 경제가 좀 성장하면서부터는, 신용 하나만으로 경제 거래를 비약적으로 확장해 주는 꿈을 그려주는(여신) 역할도 추가됐는데 이것이 모두 금융권의 몫이었다. 

금융인들도 실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일에 땀흘릴 줄 알고 작은 성과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평범한 이웃들 중 하나임을 확인한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행사는 새롭다. 금융인들 스스로나, 이들을 접하는 서민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는 다른 동네 이웃들에게까지 의미가 각자 새로울 수밖에 없다.  

◇연탄 모르고 살던 젊은 금융인들 깨우치는 선배들의 솔선수범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 장경호 코스닥협회 회장, 서영종 손해보험협회 상무,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왼쪽부터)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 장경호 코스닥협회 회장,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줄지어 릴레이로 연탄을 옮기고 있다. (사진=임혜현 기자)

봉사에 나선 금융인들을 뭉클하게 한 대목은 또 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어려운 이웃분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권이 힘을 모아 실시한 이번 활동을 계기로 이웃사랑의 실천이 지역사회에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와 다짐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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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생명보험협회 상무(사진=임혜현 기자)

정 원장의 발언이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취임 후 첫 사회공헌 봉사가 이번 금융권 합동 행사였기 때문. 그의 취임 초반부인 지난 여름과 가을은 팬데믹 위기 상황 극복을 준비하는 때여서, 유동성 과잉 정상화 추진 등 복잡한 업무들을 지휘하느라 숨가쁜 상황이었다. 이제 업무는 모두 장악했을 망정 아직 여유롭다거나 한가함을 이야기하기에는 국내외 사정이 아직도 모두 엄중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간을 내 임직원들이 함께 봉사 현장을 찾았다는 점은 금융권 전반에 큰 귀감이 된다. 정 원장은 줄지어 연탄을 손으로 나르는 한편, 지게를 직접 지고 긴 시간 자리를 지키며 함께 땀을 흘렸다.

특히 지난해 전임 원장 시절 첫 합동 행사가 열려 아직 관행이 확고하게 굳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신임 원장이 2회를 확실히 축원해 주면서, 행사의 앞날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금감원장이 직접 앞으로 바쁜 틈을 내서 나눌 줄 아는 자세를 가지자는 당부의 메시지를 금융권 전반에 던진 셈도 됐기 때문이다. 

이계문 서민금융원장의 '이제는 연탄을 쓰는 집에서 살지 않는 세대의 동료, 후배들에게' 발언도 소탈하지만 울림을 줬다.

이 원장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각 기관들이 뜻을 모아 저소득·취약계층에 온기를 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해 준 금융인들은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연탄을 쓰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고 또 지금 살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행사를 기회로 어려운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기부와 봉사 발길이 끊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세심히 살피겠다"고 다짐했다.

연탄을 나르고 카카오은행 관계자들. (사진=임혜현 기자)
연탄을 나르는 카카오뱅크 관계자들. (사진=임혜현 기자)

김주현 여신금융협회 회장은 "하루하루 살다 보면 주변을 돌아보기 쉽지 않은데, 의미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회사의 특성을 반영해 재치있지만 묵직한 비교대조 화법으로 봉사의 온기를 되새긴 임원도 있었다. 김광옥 카카오뱅크 부대표는 "금융인들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온라인이 활성화되는 세상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기회가 되었다"면서 봉사에 나선 직원들에게도 오히려 소중한 생각의 실마리가 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더했다. 카카오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이라서 대고객 직접 접점은 적은 편이지만, 이렇게 직접 봉사 현장에 나서고 의미를 몸으로 익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세상과의 소통 능력'은 어느 시중은행 못지 않아 보인다.  

아무래도 '돈'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어느 업무보다 '냉정'해야 하는 금융인들. 하지만 어려운 이웃 앞에서는 이들도 주저없이 도움의 손을 내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되길 기대해본다.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