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전 美국무장관, 코로나19로 세상 떠나
콜린 파월 전 美국무장관, 코로나19로 세상 떠나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1.10.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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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상 최초 흑인 출신 각료…유색인종에 새 길 열어
2000년 12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2000년 12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흑인 출신으로 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차례로 역임한 콜린 파월이 18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미 최초 흑인출신 국무장관으로 기록된 그는 1991년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며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대북 문제에도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일제히 19일 파월 전 장관이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합병증 등으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가족들은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다정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한 미국인을 영원히 잃었다”고 사망 소식을 알렸다.

유가족들은 파월 전 장관이 백신 접종을 마쳤으나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월터리드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가 끝내 사망했다고 밝혔다.

파월 전 장관은 1937년 뉴욕 할렘가의 한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에서 출생했으며, 미 역사상 4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퇴역 4성 장군으로 알려졌다.

뉴욕시립대에서 학군단(ROTC)을 통해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을 비롯해 서독 등에서 근무했으며 베트남 전에도 참전, 미 행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파월 전 장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인 1986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거쳐 1987년 11월에는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다.

또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시절인 1989년에는 유색인종(흑인) 최초로 최연소 합참의장자리에 올랐다.

특히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합참의장의 직위에 있으면서 전쟁을 총괄해 최종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걸프전 당시 이라크(대통령 사담 후세인)에 대응할 수 있도록 ‘파월 독트린’을 만들었으며, 파월의 이같은 외교적 해법은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충격과 공포’(Shock-and Awe)로 불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2001년 1월(부시 행정부) 흑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무장관에 임명되면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부시 2기 행정부가 들어선 2005년 1월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며 대외 정책의 핵심적 막후 역할을 맡았다.

특히 높게 평가되는 부분은 두루 요직에 등용되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 싸움과는 일정한 거리를 뒀다는 점이다.

다만 2003년(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이 이라크와 벌인 전쟁의 상흔은 부시 대통령과 그 행정부 뿐만 아니라 파월 인생에서도 커다란 오점으로 남았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 보유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분을 얻으려 했지만 끝내 명확한 증거조차 찾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의 큰 비난에 직면해야했다.

이에 파월 전 장관은 200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가 ‘WMD’를 보유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긴 연설에 나섰으나 다음해 의회 연설에선 미국 측에 제공된 증거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했다.

다만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 출신으로 다양한 요직을 거치면서 유색인종에게 새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가 쌓은 경력들은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걸프전 종전 직후인 1992년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가 하면 1996년에는 재선을 노리던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화당 경쟁 후보로 출마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월 전 장관은 공직에서 퇴임한 후 대표적으로 관타나모 수용소 처우 등을 지적하는 등 부시 행정부가 수행하는 정책들을 비판하면서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특히 2008년과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소속 정당이었던 공화당이 아닌 경쟁을 벌여왔던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2016년 대선에선 힐러리 클린턴을, 2020년에도 클런턴 전 대통령이 아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1962년 결혼한 파월 전 장관은 알마 비비안 존슨 여사와의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뒀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