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충돌방지법, 8년 만에 국회 통과… 의원 징계는 결국 '셀프'
이해충돌방지법, 8년 만에 국회 통과… 의원 징계는 결국 '셀프'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4.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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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이나 미공개 정보로 사적 이익 취하면 처벌
국회의원, 사적 이해관계 등 신고해야… 위반 땐 동료 의원 처벌에 의구심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직자·국회의원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사익을 쫓는 것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국회의원의 경우 징계 여부를 같은 동료 의원이 결정하도록 하게 돼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진 의문이다.

여야는 29일 밤 본회의를 열고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재석 251명 중 찬성 240명, 반대 2명, 기권 9명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재석 252명 중 찬성 258명, 기권 4명으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먼저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이나 미공개 정보로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는 게 골자다. 고위공직자 범위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지방의회 의원, 국·공립학교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직원까지 확대해 그 대상만 약 19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법안 통과에 따라 내년 5월 30일부터 공직자는 직무 관련자가 사적 이해관계자임을 알게 되거나 특정 업무와 관련된 부동산을 매수하는 경우 등에는 이를 안 날로부터 14일 안에 신고해야 한다. 또 해당 업무의 회피를 신청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직무상 비밀이나 미공개 정보로 재산상 이익을 취한 공직자는 7년 이하 징역, 제3자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벌금은 최대 7000만원으로 정했다.

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햇수로 8년 만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3년 19대 국회에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이라는 이름의 제정안을 처음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이해충돌방지 관련 내용은 공직자 직무 수행 범위 등이 모호하다는 이유 등으로 제외됐다.

또 '공직자의 정상적인 공무를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고, 국회의원의 경우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직무를 배제할 경우 의정(의회정치) 활동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부정청탁 금지 부분,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분만 2015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최근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의 땅 투기 사태가 불거지면서 입법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제정안은 한 번의 공청회와 여덞 번의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를 거쳤고,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22일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전날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문턱을 넘었다.

여야는 같은 날 본회의에서 이른바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도 제도화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국회의원에 대해 민간 업무활동 경력을 등록하도록 하고,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이 있는 상임위원회 배정을 제한하는 등 세부적 이해충돌 관련 규제 내용을 담는다.

국회의원은 당선 결정일로부터 30일 안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일정 비율·금액 이상의 주식·지분 등을 소유하는 법인·단체 명단을 등록해야 한다. 등록해야 할 주식·지분의 구체적 기준은 국회 규칙에서 정하도록 했다.

나아가 의원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임원 등으로 재직하거나 자문 등을 제공하는 법인·단체 명단과 대리·고문·자문 등을 제공하는 개인이나 법인·단체 명단도 등록해야 한다. 이들의 부동산 소유권·지상권·전세권과 광업권·어업권·양식업권 역시 등록 대상이다.

의원 본인의 경우 당선되기 전 3년 이내 재직했던 법인·단체의 명단과 업무 내용까지도 제출 대상이다. 같은 기간 대리·고문·자문 등을 제공했던 개인·법인·단체 명단과 사업 내용도 제출해야 한다.

의원 본인의 등록 내용 공개 여부는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등록 정보는 공개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해충돌 신고대상 안건에 해당해 이해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해당 의원이 위원장에게 회피를 신청하도록 하고,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해 회피를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사적 이해관계 등록, 신고·회피 의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등을 위반한 경우 국회법에 따르도록 해 제대로된 징계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법 위반 시 어떻게 징계할지 등은 동료 의원으로 구성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독립된 윤리심판원을 따로 만들어 이해충돌 심사와 징계를 전담시키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국회의원 징계는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또는 경고, 30일 이내 출석정지, 제명 등이 있다. 지난 20대 국회 징계기관 윤리특위에 제출됐던 의원 징계안은 모두 47건이었으나, 단 한 건도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윤리특위에도 총 12건의 징계안이 계류된 상황이지만, 심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거대 양당은 이번 제정안과 개정안 통과를 자찬하는 분위기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김영란법이 공직사회 접대문화를 바꿨다면,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의 불공정한 이익 추구를 금지하고, 보다 엄격한 공정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깨끗한 개혁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덧붙여 "민주당은 앞으로도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부동산 투기, 채용 비리,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사익 추구 등과 같은 부정·부패가 근절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살피겠다"고 부각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그나마 구두 논평을 통해 "사라진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보다 능동적으로 국민의 편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공직자의 청렴도를 높이고, 부정·부패에는 당당히 맞서는 모습으로 국민께 신뢰받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여야는 이번 본회의에서 지분적립형 분양 주택의 공급 절차 등을 규정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도 가결했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분양가의 20∼25%를 먼저 내고, 해당 지분을 취득해 거주하면서 나머지 지분은 20∼30년에 걸쳐 나눠 내 주택의 완전한 소유권을 갖는 방식이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8·4 부동산 대책을 뒷받침하는 법안이다.

또 임신 중인 근로자가 출산 전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출산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던 육아휴직을 임신 기간 중에도 쓸 수 있게 됐다.

유명 브랜드(매주)를 모방해 만든 이른바 '미투 브랜드' 난립을 막기 위해 직영점이 1개 미만이거나 영업 기간이 1년 미만인 가맹본부의 정보공개서 등록 신청을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부하도록 한 가맹사업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를 포함해 여야가 처리한 법안은 총 49개다.

천대엽 대법관 임명동의안은 재석 의원 266명 중 찬성 234명, 반대 27명, 기권 5명으로 처리했다.

당초 민주당은 윤호중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면서 공석이 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선출안까지 처리하려고 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이 "협의를 계속하라"고 주문해 다음달 7일 5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