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지속 경제사업 흑자전환 성과…"새로운 100년 위한 초석 만들겠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취임 300일을 맞이하는 가운데, 현장과 디지털, 유통혁신에 초점을 맞춘 행보로 농협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농협은 이 회장 취임 후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 속에서도 실적 호전을 기록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임기 내 농협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초석을 만들고 농업·농촌의 새로운 미래상인 ‘농토피아(農Topia)’ 실현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공언한 만큼 광폭 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 회장은 취임 때 ‘농협다운 농협’을 강조하고, 새로운 먹거리 창출로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면서 농업·농촌 현장경영과 디지털 농협, 유통구조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이달 25일 취임 300일을 맞는다. 이 회장은 지난 1월31일 취임 당시 그간 중앙회장들이 해왔던 것처럼 별도의 거창한 취임행사를 하기 보단, 농가 소통을 우선으로 생각해 강원 홍천지역 딸기농장을 직접 찾아 현장 애로를 듣는 것으로 취임식을 갈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2만 농협 임직원 모두는 농업인이 없는 농협은 존재의 이유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71년 경기 성남 낙생농협 직원으로 시작해 조합장 경력까지 40년 가까이 농업 현장에 있었다. 잇따른 시장개방과 소득 불안정으로 어려움이 커진 농가들의 고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 회장은 농업 현장에서 답을 찾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농협 발전과 성장의 가장 큰 토대라 생각했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코로나19로 대목을 잃어버린 화훼농가, 일손이 부족한 사과농장 등 틈나는 대로 농업 현장을 찾았다. 지난여름에는 유례없는 긴 장마와 잇따른 태풍에 전국적으로 농가 피해가 막심했는데, 이 회장은 8~9월 두 달여간 전국 20여개 시·군 농촌지역을 찾으며 농가들에게 지원책을 제공하고자 분주했다. 같은 기간 이 회장의 현장 경영은 농림축산식품부 등 중앙부처 장·차관과 농업계 기관장을 포함해 가장 활발했다.
이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강조한 디지털 농협 구현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디지털 농협을 위한 투자는 필수’라는 평소 지론을 갖고 있는 가운데, 역점사업으로 강조한 디지털 농협 구축을 위한 모양새를 차근차근 갖춰가는 모습이다.
그는 올 5월 ‘비전 2025’ 선포식 당시 디지털 혁신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스마트농업 활성화와 농·축협별 온라인 사업 강화, 전담조직 구성 등을 약속했다.
취임 반년 째인 지난 7월 조직개편을 전격 단행하면서 ‘디지털혁신부’를 신설했다. 디지털혁신부는 기존 기획조정본부 내 연구개발(R&D) 통합 전략국과 농협미래경영연구소의 4차산업혁명추진센터를 통합한 것으로, 범농협 사업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인재개발원 아래 뒀던 미래농업지원센터도 ‘디지털농업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디지털혁신부 소속으로 이동시켰다.
이 회장의 디지털 경영은 범농협 차원에서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농협 농업경제지주는 지난 5월말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인터넷·모바일 기반의 ‘온라인 농산물거래소’를 첫 오픈하고, 양파와 깐마늘, 사과까지 거래품목을 확대했다. 축산경제지주도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한우개량부터 유통까지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농협 축산경제 한우핵심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관련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 영업기반을 마련했다.
농협상호금융은 이달부터 직원들이 수행했던 단순·반복업무를 로봇이 대신 처리하는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시스템을 전격 도입하고, 내년부터 신용업무를 취급하는 전국 1000여개 이상의 농·축협까지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이 회장은 농가소득 안정과 소비자 편익 도모 차원에서 농축산물 유통혁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올 4월 이를 구체화하는 ‘브레인’ 역할의 ‘농협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유통혁신에 대한 전략적인 틀을 짤 수 있도록 했다.
올바른 유통위는 약 반년 간 30회가 넘는 토론과 회의를 통해 국내 농축산물 유통의 공급체계(Value Chain) 전반을 진단하고, 농축산 분야의 국내외 최신 트렌드를 분석하는 등 미래 농축산업 발전을 위해 농협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그렸다. 이는 지난 18일 열린 ‘올바른 농축산물 유통혁신 실천 결의대회’에서 윤곽이 드러났다.
크게 △스마트한 생산·유통 △유통체계 혁신 △온라인 도·소매 확대 △협동조합 정체성 확립을 4대 핵심 전략으로 세우고, 농협 중심의 유통 허브(Hub)로 농축산물 유통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겠다는 게 이 회장의 의지다.
업무자동화에 따른 스마트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RPC(미곡종합처리장) 도입, 경제지주 중심의 농산물 도매기능 일원화, 상품 소싱 오픈 플랫폼 강화와 B2B(기업 간 거래) 온라인공판장 개설, ‘e하나로’ 전국 당일배송체계 구축 등 역량을 높여 유통 경쟁력을 배가시킨다는 구상이다.
이 회장은 이날 “농가는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에 많이 팔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먹거리는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농협 본연의 역할”이라며 “발굴된 전략들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 농축산물의 유통단계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협은 이 회장 취임 이후 내실을 기하면서 경영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올 3분기 누계 사업량(잠정치)은 농업경제지주 16조916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6% 늘고, 축산경제 역시 10% 증가한 5조4706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의 경우, 농업경제는 291억원 늘어난 522억원, 축산경제는 203억원 확대된 186억원 등 총 708억원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127억원 적자를 냈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사업 전반에 걸쳐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남은 하반기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올해 농협 경제사업 손익은 흑자 전환이 유력할 전망이다.
농업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조합장 등 오랜 현장경험과 8년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을 맡는 등 농협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210만 조합원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이전 회장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