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 롯데 수사, 총수 일가 5명 무더기 재판으로 마무리
'용두사미' 롯데 수사, 총수 일가 5명 무더기 재판으로 마무리
  • 조재형 기자
  • 승인 2016.10.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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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경영 비리 수사가 마무리된 19일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모습.ⓒ연합뉴스

검찰이 19일 신격호 롯데그룹(94) 총괄회장과 신동빈(61) 회장 등 총수일가 5명을 한꺼번에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면서 4개월여에 걸친 그룹차원의 경영 비리 의혹 수사가 마무리됐다.

검찰이 정예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 거액의 탈세 등 범죄 혐의를 밝혀냈지만, 수사 규모와 기간에 비하면 수사 성과가 초라하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은 신 회장 등의 행위를 '그룹 경영권 승계구도의 틀에서 벌어진 오너일가의 회사 자금 빼먹기·이권취득 범행'으로 규정하고 혐의 입증을 위해 총력을 다할 계획이지만, 유죄 판결을 받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총수일가에 대한 처벌 여부는 이제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간 형국이다.

신 회장은 검찰이 영장 재청구를 않음으로써 인신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지만 향후 법원에서 유무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법정공방을 거쳐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전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총수일가·전문경영인 등 롯데그룹 총 24명 구속·불구속 기소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이날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현재 롯데 경영을 책임진 신 회장에게는 500억원대 횡령과 1750억원대 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일가에 증여하면서 3000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신 전 부회장은 롯데계열사에서 부당하게 400억원가량의 급여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56)씨는 297억원대 증여세를 내지 않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까지 포함하면 롯데그룹 총수 일가 5명이 한꺼번에 법정에 서게 됐다.

전문경영인 중에는 그룹 차원의 횡령·배임 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정책본부 지원실장을 지낸 채정병(65) 롯데카드 대표, 황각규(61) 정책본부 운영실장, 소진세(66)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이 불구속 기소됐다.

7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채널 재승인 정관계 로비를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강현구(56) 롯데홈쇼핑 사장, 270억원대 세금 환급 소송 사기 및 일본 롯데물산 '통행세' 지급 의혹이 제기된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 등도 재판에 넘겨졌다.

또 하도급 업체에 공사 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돌려받아 비자금 302억원을 조성해 대관 업무 등에 쓴 횡령 혐의로 이모(62) 전 롯데건설 대표, 법인자금으로 산 상품권을 유용하는 등 11억원대 횡령 혐의로 최모(59) 전 대홍기획 대표가 기소됐다.

총수일가 5명을 제외하고 구속·불구속 기소된 그룹 정책본부 간부와 계열사 대표 등 전·현직 임직원은 모두 14명이다. 개인 22명과 법인 2곳(롯데건설·롯데홈쇼핑)을 포함한 전체 기소 인원은 총 24명이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서씨 딸 신유미(33) 롯데호텔 고문은 기소중지됐다.

검찰은 "회사 자금 빼먹기, 계열사 불법 지원, 조세포탈 등 총체적 비리를 규명하고 책임 있는 총수일가 모두를 재판에 넘겼다"며 "적발된 범죄 금액이 3755억원에 이르고 총수일가의 횡령성 이득액이 1462억원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의 기업 사유화 폐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연합뉴스
◇ '페이퍼 컴퍼니'에서 '유령 직원'까지… 도덕성 비난 불가피

검찰에 따르면 롯데그룹 총수 일가는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주식 증여사실을 숨기고 탈세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법무법인이 증여세 포탈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고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 등은 약 1년동안 정책본부와 외부전문가를 동원해 홍콩, 싱가폴, 미국에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탈세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영화관사업 전체 이익의 50%가 넘는 매점 운영을 총수일가가 독점한 사실도 드러났다.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과 신 총괄회장의 세번째 부인인 서씨에게 영화관 매점 운영사업을 몰아줬다.

이들이 영화관 매점을 운영하면서 회사는 매출 1989억원, 영업이익 778억원의 손실을 입었으며, 이 자금은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해 사용됐다.

또 신 전 부회장, 서씨 등은 회사에 이름만 걸어놓고 10년 동안 500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부당하게 지급받은 급여를 주식매수 대금, 카드대금 등 생활비, 세금 납부 등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했다.

신 총괄회장은 비상장주식을 계열사에 높은 가격에 팔아넘긴 혐의도 받고 있다. 이렇게 팔아치운 주식대금 408억원은 신영자, 서미경 등에게 현금 600억원을 지원하는데 사용됐다.

롯데그룹 경영권 승계구도 틀에서 벌어진 총수일가의 탈세와 비리 등이 상당수 드러나면서 롯데그룹 총수일가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롯데그룹은 이날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오랫동안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향후 재판 과정에서 성실하게 소명하겠다"며 "롯데가 사회와 국가경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앞으로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수사 핵심 비자금 조성 의혹 못밝혀

검찰은 다만 수사 주안점으로 뒀던 비자금 수사는 뜻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롯데 수사에 3개 부서, 검사 20여명을 투입했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390여명을 소환해 720여 차례 조사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하자 검찰은 사건 착수 두 달 만에 수사의 초점을 비자금에서 총수 일가의 탈세혐의로 틀어 신격호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수천억 원대 탈세혐의를 잡아냈다.

결국 신동빈 회장 주거지 등에서 발견된 신격호·신동빈 등 총수 일가의 개인 비자금은 급여 및 배당금 성격이라는 롯데 측의 주장을 깨뜨리지 못했고, 롯데케미칼 등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일본 롯데 등의 비협조로 밝혀내지 못했다.

수사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수사 범위를 넓히는 과정에서 이인원 부회장이 ‘비자금은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 백화점 면세점 입점 비리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아온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연합뉴스
◇ 신격호·서미경 출석부터 험로… 법리공방 3년 이상 걸릴수도

이런 가운데 신 회장은 검찰이 기소한 주요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신 회장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할 경우 검찰로선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과 서씨의 경우 법정에 세우는 것부터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검찰조사를 받을 때도 고령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며 본인이 머무르고 있는 롯데호텔 집무실에서 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신 총괄회장이 법원에도 같은 이유를 내세우며 출석 연기를 요청하면, 담당 재판부는 의사로부터 의견서를 받는 등 제반 사정을 검토해 재판 연기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검찰의 잇딴 귀국 종용에 불응하고 있는 서씨 역시 재판 출석여부가 문제다. 검찰은 서씨가 계속해서 소환통보에 응하지 않자 지난 달 일단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서씨가 빠른 시일 내에 귀국할 수 있도록 여권 무효화 절차를 밟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에선 롯데 총수 일가에 대한 최종 판결까지 3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초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하기 때문에 재벌 총수나 일가의 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은 다른 재판보다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며 상당기간 소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조재형 기자 grind@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