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훈련장 총기난사 3명 사망… '예고된 참극'
예비군훈련장 총기난사 3명 사망… '예고된 참극'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05.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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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관심병사' 동료 예비군들에 7발 난사…2명은 부상
유서에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다"…총 든 예비군 20명에 조교 겨우 6명

▲ 13일 오전 예비군 사격훈련중 총기 사망사고가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군 관계자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한 예비군의 시신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에 있는 육군 동원예비군 사격 훈련장에서 13일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예비군 3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해자는 현역 시절 '관심병사'로 분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심병사였던 예비군에게 실탄을 장전한 총을 쥐어주고 엄격한 통제도 하지 않은 육군의 허술한 예비군 부대 운영이 처참한 살상극을 불렀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동료 예비군들에 7발 난사하고 자살

육군에 따르면 사건은 이날 오전 10시37분경 서울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송파·강동 동원예비군 훈련장에서 발생했다.

동원훈련 이틀째를 맞은 210연대 2대대 5∼7중대 소속 예비군들이 25m 거리의 '수준 유지' 사격 훈련을 받고 있었다.

7중대 소속 최모(23) 씨는 맨 왼쪽에 있는 1사로(사격 구역)에서 표적을 향해 1발을 쏜 뒤 갑자기 일어서서 '부사수' 자격으로 뒤에 앉은 예비군과 오른쪽 2∼5사로 예비군들에게 총을 7발 난사했다.

최 씨는 K-2 소총을 지급받았으며 탄창에는 총탄이 모두 10발 들어있었다. 그는 총기 난사 직후 9번째 총탄을 자기 머리에 쏘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예비군은 모두 4명이다. 부상자들은 삼성의료원, 국군수도병원,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이송됐으나 이들 가운데 박모(24) 씨는 치료 도중 숨졌으며 윤모(24) 씨도 이날 밤 사망했다.

다른 부상자 황모(22), 안모(25) 씨도 크게 다쳤다.

최 씨의 총기 난사로 사격장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얼룩진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했다.

◇ 가해자 최모 씨는 현역 시절 '관심병사'…"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다"

총을 난사하고 자살한 최 씨는 현역 시절 'B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 관계자는 "최 씨가 부대 적응을 못해 동료들이 '밀착 관리'를 한 것으로 안다"며 "당시 동료와 간부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사정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군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소속 부대를 여러 차례 옮겼으며 우울증 치료 전력과 인터넷 중독 증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육군이 관심병사로 분류됐던 예비군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함부로 쥐여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 13일 총기 사고가 발생한 서울 내곡동 예비군훈련장에 접근금지선이 설치되어 있다.ⓒ연합뉴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아무리 현역 시절 관심병사였다고 하더라도 일단 전역하면 군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할 길이 없다"고 해명했다.

최 씨는 범행 직전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서는 그의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최 씨는 12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유서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박증으로 돼간다"고 썼다.

그는 총기 난사를 염두에 둔 듯 "내일 사격을 한다. 다 죽여버리고 나는 자살하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 모르겠고 그냥 살아있으니깐 살아가는 것 같다"며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도 보였다.

◇ 예비군 20명에 현역병 조교는 겨우 6명

육군의 사격장 훈련 통제도 극히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한 사격장에는 20개의 사로(사격구역)가 있었고 20명의 예비군들이 이곳에서 한꺼번에 사격을 했다. 이들의 3∼4m 뒤에는 다음 차례에 사격할 예비군들이 부사수 자격으로 배치됐다.

현역 대위급 장교 3명과 병사 6명이 이들을 통제했다. 예비군을 밀착 통제해야 하는 현역병 조교 6명이 무려 20명이나 되는, 실탄이 장착된 소총을 든 예비군들을 맡은 것이다.

가해자 최 씨와 가장 근접한 현역병도 3∼4사로 부근에 있어 최 씨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최 씨가 돌발 행동을 해도 바로 제압하기는 어려운 곳에 있었던 셈이다.

예비군이 총기를 옆이나 뒤로 향할 수 없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제대로 돼있지 않았고 사격 절차와 실탄 지급 방식을 표준화한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아 예고된 사고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육군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일부 사로는 총기가 고정돼 있지 않았으며 그렇지 않은 사로도 있었다"며 "사로에 조교를 세우는 방식에 관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예비군 사격 훈련에서 지급하는 총탄은 9발이 기준인데 이번 훈련에서 10발이 지급된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이에 대해 육군측은 "예비군에게 10발씩 주면 총탄 개수를 세기 편하기 때문에 해당 부대에서 편의상 10발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에 관한 육군의 언론 브리핑도 오락가락했다.

육군은 이날 오전만 해도 이번 사건이 영점사격(총의 조준점과 탄착점을 일치시키기 위한 사격) 훈련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오후에는 수준 유지(현역시절 실력을 유지하기 위한 사격) 훈련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 한민구 장관 "희생자에 깊은 애도"…예비군 훈련시스템 개선 착수

사건 발생 직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건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시하고 부상자 치료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했다고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밝혔다.

한 장관은 이날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 도중 급히 국방부로 복귀해 총기 난사 사건 상황을 보고받았다.

필리핀을 방문 중이던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당초 17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사건 소식을 듣고 일정을 단축해 14일 귀국하기로 했다.

육군은 이번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68명으로 구성된 중앙수사단을 편성했다. 수사단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직원들도 투입됐다.

육군은 예비군 훈련시스템과 훈련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손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관계자는 "인사, 헌병, 기무, 군검찰 등 5부 합동으로 해당 부대와 다른 예비군 부대를 대상으로 예비군 훈련시스템과 훈련체계 등을 점검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예비군 훈련 관리 부대 지휘관들에게 훈련장에 위해 요소가 없는지 현장에서 즉각 파악토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군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순직 처리를 검토하고 있다.

순직이 결정되면 1억1300여만원의 유족 보상금과 84만∼120만원 범위에서 매월 보훈 연금을 받게 된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