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최종 판결은 대법원 몫
'국정원 대선개입' 최종 판결은 대법원 몫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5.02.1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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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유죄에도 웃지 못하는 검찰… 파장 커질 듯
▲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 선고공판을 위해 9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법정구속되면서 정치·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대선 결과의 정당성을 둘러싼 정쟁을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2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지만,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원 전 원장 측과 검찰 양쪽 모두 "판결문을 면밀히 살핀 뒤 상고(上告)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제 최종 결정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번 항소심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해 유죄를 선고받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 9일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이 대선 정국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로 여론을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1심이 이런 행위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봤으면서도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한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는 아니다"라고 판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이다.

원 전 원장은 구속에 앞서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원 전 원장의 변호를 맡았던 이동명 변호사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결과"라며 "의뢰인들을 만나보고 상고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 선고공판을 위해 9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재판 과정은 물론, 수사 과정에서부터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던 검찰 조차도 내부에선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재작년 6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지원을 받은 수사팀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댓글이 발견된 만큼 선거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일부 검사는 선거 개입 의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선거법 적용에 난색을 표했다.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은 직속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항명'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선거법 위반 여부는 명쾌한 판단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판결 선고 이후 7일 안에 상고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다음 주 초에는 상고 여부가 확정된다.

상고가 확정되면 대법원은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을 감안,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

대선 개입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로 앞으로 일어날 파장은 그 이상이 될 것이란 관측이 팽배하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고, 이를 최고 수장이 지휘했다는 사실이 사법부 판단을 통해 인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선거운동이 시작된 시기를 여당 후보가 확정된 시기로 못 박았다.

당장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엇갈린 논평을 내놓으며 대립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정보활동을 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국정원은 같은 잘못이 재발하지 않게 심기일전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국회 프리핑에서 늦었지만 법치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뜻깊은 판결"이라며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국정원 대선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딜레마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말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무죄가 확정된 이후 그의 수사·재판에 절대적으로 기댔던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의 위증 혐의 입증에 나선 상황이다.

이번 판결은 권 의원의 소환 조사 시기와 사건 처리 방향 등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원 전 원장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잔여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른바 '좌익효수'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여전히 수사 중이다.

'좌익효수'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은 2011∼2012년 호남과 야당을 비하하는 악성 인터넷 게시물·댓글을 3천건 넘게 남겼다. 검찰은 이 아이디의 주인을 국정원 직원으로 확인하고 지난해 6월 소환조사했으나 원 전 원장의 재판 결과를 보고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