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안양천 중하류 - 둑방길 벚꽃대궐과 숭어떼들의 공중제비, 잠자리의 고공정사가 즐거운 곳
(13) 안양천 중하류 - 둑방길 벚꽃대궐과 숭어떼들의 공중제비, 잠자리의 고공정사가 즐거운 곳
  • 주장환 작가
  • 승인 2014.07.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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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서 발원, 학의천-산본천 등 합류해 한강으로 달려
한강합수부에서 신정교까지 5.2km 쾌적한 수변 둘레길

구름에 가렸던 해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자 수변식물은 온몸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몸에 물속 오염물질을 가득 담은 채 갈채처럼 쏟아지는 햇빛을 향해 두 손을 활짝 펼쳐들고 있었다. 그 몸짓에 화답이라도 하듯 맹꽁이들이 귀청이 떨어져라 일제히 합창을 시작했다.

그 소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불빛을 밝혀주었다. 한강 합수로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폭풍질주를 하던 급류는 어느새 그 소리에 놀란 듯 유속을 느리게 하고 있었다.

하늘은 아직 태풍이 몰고 온 구름으로 먹을 풀어 놓은 듯했다. 그 틈새로 가끔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그즈음 양평 한솔 아파트 인근 둑방길에 서있는 키 큰 포플러들은 매미들의 합창소리로 아득한 추억을 되살린다.

길들은 이제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푸석거리며 먼지 날리던 그 길은 이제 찰진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안양천 최하류 인근 양화교에서 사람들은 잠시 두런거리며 수인사를 나눈다. 대부분 자전거를 즐기는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잠깐 떠들썩하게 웃더니 떠나갔다.

▲ 담쟁이 덩굴길. 성인이 겨우 한 명 정도 스쳐 지나가도 버거운 길이지만 운치 때문에 불평이 없다.
■ 한강합수부는 과거 매사냥터
   6·25땐 치열한 전투 벌이기도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숭어 떼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숭어는 물고랑을 만들며 이리저리 폴싹대면서 염창교 합수부 쪽으로 몰려갔다. 그렇게 뛰어오르는 모습은 양학선의 ‘쓰카하라 트리플(양 손으로 뜀틀을 짚고 공중에서 옆으로 돌아 몸을 펴고 세 번 비틀어 착지)’ 못지않았다. 은빛 뱃구레는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눈 먼 바람 한 줄기 섬광처럼 흐르는 바로 그때, 숭어는 오르가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물 반, 고기 반"이라며 희희낙락했다. 낚시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둘러 낚싯대를 던졌다. 낚싯대가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숭어들이 지느러미를 펄떡이며 나오기 시작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채 10분도 안 돼 열 댓 마리가 올라왔다.

양화교 밑을 지나 영등포 쪽으로 걷는다. 이 길을 쭉 가면 광명과 안양이 나온다. 조금 걷자 나그네의 발소리를 들은 맹꽁이들이 더욱 요란하게 울어대는데, 그 소리에 외로이 서 있던 노란 창포 꽃이 놀란 듯 고개를 숙인다.

양화교는 안양천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의미 있는 다리이다. 합수부로 가는 마지막 다리이기 때문이다. 합수부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철관포(鐵串浦)'라고 불린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서울에서 부평이나 인천, 그리고 강화로 가는 큰 길 옆 나루터였다.

이 지역은 일대가 매사냥터로 유명하여 세종대왕도 가끔 이곳을 찾았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김포 통진에서 매사냥을 하고 귀성길에) 낮참으로 철관포에 머물렀는데, 술자리를 베풀고 효령대군 이보 등이 입시하였다. 그 길로 낙천정에 돌아왔다. 날씨는 춥고 길은 험하여 시위하던 군사 중에 미처 따라 오지 못한 자가 많았다."

또한 세종대왕의 형이었으나 세자 자리를 세종에게 넘겨주었던 양녕대군도 태종 임금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세자전을 빠져나와 '절친'들과 이곳에서 매사냥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6.25 때는 양화교 인근 안양천 제방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삼각지 인근에 주둔하다 퇴각한 수도사단 제18연대, 일명 백골부대 제3중대가 1주일간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여 반격의 시간을 벌게 해준 기념비적인 곳이기도 하다.

양화교를 조금 지나치면, 영등포수변둘레길 표지판이 나온다. 그 길가로 비가 내려 저절로 생긴 물웅덩이에서는 고추 잠자리들이 고공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때론 높게, 때론 낮게 비행하면서 그들은 생애 최고의 열락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위를 빙빙거리던 수잠자리 한 마리가 질투에 눈이 멀어 정사 중인 한 쌍에게 다가가 훼방을 놓는다.

그러나 어림없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여인을 쉽게 빼앗길 리 만무하다. 정면 승부를 내려는 듯 돌진하는 수컷을 피해 저공비행을 하더니 물에 꼬리를 살짝 담그곤 뒤집기로 비상해버린다. 과연 미군이 차세대 무인비행기의 모델로 연구하고 있을 정도의 비행술이었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잠자리는 4개의 독립된 근육으로 조정하는 날개로 정지비행을 물론 후진, 뒤집기 비행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한다.

우리 국토 어디에든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겠느냐마는, 안양천 역시 선사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풍부한 물이다. 세계 4대문명 발상지가 모두 강변에 위치하고 있듯 우리 한강도 그렇고 안양천도 그러하다. 물이 있으면 논과 밭의 경작이 가능하고 과수나무나 가축을 키우기에도 좋았다. 그리하여 안양천은 풍족한 먹을거리로 우리 한민족 삶의 근거지 역할을 해왔다.

안양천은 의왕, 군포, 안양, 광명, 그리고 서울의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양천구 등을 두루 지난 뒤 성산대교 서쪽 염창교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기 때문에 한강 서남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삼성산에서 발원하는 하천과 백운산에서 흘러나온 학의천과 군포시를 흐르는 산본천 등의 지류가 안양시 석수동에서 합류해 북쪽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유역은 다양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유역은 빗물이 모여 작은 실개천을 이루고 하천으로 강으로 점차 커져가면서 생긴 물길들이 모여드는 전체 범위를 말하는데 산과 강을 경계로 하는 자연의 행정구역이다.

안양천은 학의천, 삼성천, 수암천, 삼막천, 오전천, 산본천 등 크고 작은 지천을 가지고 있다. 또 다양한 석기들과 청동기 시대 유적인 평촌동의 지석묘, 관양동의 주거 유적지 등도 이 지역의 발자취를 더듬게 해준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아이들을 위한 교통 교육장이 보이고 야구장으로 주로 사용하는 넓은 운동장이 조성돼 있다. 한 1km를 포플러며 버드나무 그늘을 따라 가다 보면, 양평교가 보이고 이대목동 병원으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강 중앙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다리 중간쯤에 서서 양안을 감상하거나 흐느적거리는 수초 사이로 헤엄치고 있는 고기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마음 닦기도 겸할 수 있다.

▲ 안양천 둑방길. 벚꽃으로 유명한 이곳은 봄이면 꽃대궐을 만드는데 뒤이어 찾아오는 버드나무의 솜털은 환희다.
이쯤에서 강변을 따라가지 않고 둑방에 조성된 산책길로 오르면, 또 다른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 길은 봄이면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벚꽃 터널지다. 벚나무가 하늘을 가리는데다 떨어져 내린 꽃잎들은 비단 카펫을 만들어 준다. 이 카펫은 그라데이션(보카시) 명자 꽃, 철쭉, 개나리 등과 어우러져 별천지가 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이번엔 버드나무가 뿜어내는 꽃가루가 솜털처럼 포근한 길을 만든다. 잘 알려진 여의도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 중론이다. 바쁜 사람이면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6번이나 7번 출구로 나와 한 2~3분 정도 걸으면 바로 만날 수 있다.

둑방 산책로가 단조로우면 다시 천변으로 내려가자. 버드나무가 곳곳에서 산발하고 있는 천변에서 만나는 왜가리의 하품이며 고방오리, 재갈매기 등이 재잘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면은 적막하나 소란은 가끔 일었다. 물속의 풀들이 수군대며 눈을 뜨는 동안 앞선 숭어들을 뒤좇아가는 후학들이 물 위를 솟구쳐 공중제비를 하거나 물수제비를 뜨며 파드득 나르는 왜가리의 우아한 비상때문이었다.

■ 고방오리, 재갈매기 나르고
   물수제비 살살 뜨는 왜가리

안양천은 숭어의 공중제비로 여름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천변 실길처럼 이어진 가장자리에는 때 이른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대중없었다. 그는 사람이 무엇을 하건, 나무나 꽃들이 무엇을 하건 관심이 없었다. 멀리 몰려 있던 매지구름이 다가 오는가 했더니 성긴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비꽃이라 한들 어찌하랴. 모두들 웅크렸다.

▲ 부들과 맹꽁이. 비만 오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물웅덩이에서 부들은 맹꽁이의 합창 소리를 듣고 쑥쑥 커간다.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고개를 세우고 있던 부들과 억새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맹꽁이는 신이 났다. 아까 양화교 밑에서 울던 놈들 보다 몇 배나 더 크게 울어 제끼는데, 이번엔 아예 소음이다. 울다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맹꽁이에게 비는 무엇일까? 아마 축복일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요란을 떨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발달되어 세계의 하천들에 비해 유역면적이 좁은 편이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한강이 가장 유역면적이 넓고, 세계적으로는 아마존강이 가장 넓다. 유역면적이 넓으면, 하천에 흐르는 물의 양이 연중 고르고 유역에 삼림이 발달하여 가뭄과 홍수의 피해가 적다는 것이 정설이다.

안양천은 큰물만 만나면 피해를 왕창입는 곳이었다. 1970년대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물이 풍부한 안양천변에 대규모 공단이 조성됐고, 안양천으로 유입된 공장 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생명이 사라진 하천이 됐다.

그러던 안양천이 아직은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변했다. 1999년 안양천 유역 21개 민간단체가 모여 '안양천 살리기 네트워크' 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확산시킨데다 안양천 유역 13개 기초 자치 단체장으로 구성된 수질개선대책협의회가 힘을 보탠 덕분이다.

마치 나무에 나이테가 쌓이는 것처럼, 세월의 족적은 증거를 남긴다. 안양천은 오래된 여정 속에 그 피곤함을 풀어 놓는 듯 힘들어 보였다. 아직도 시커멓게 내려오는 하수며 각종 오염 물질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고단함은 안양천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다 그러할 것이다.

철새보호 구역에서는, 그런 고단함이 묻어있는 흰뺨 검둥오리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하천 한가운데 모래무더기가 쌓인 곳에 앉아서 주변의 작은 소란에 전혀 요동도 하지 않고 먼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스터 섬의 석상들 같았다.

▲ 철새보호 구역에서는 이스터 섬의 석상들처럼 하늘 바라기를 하고 있는 철새들을 볼 수 있다.
■ 목동교-오목교등은 1급 '쉼터'
   자연학습장에선 희귀꽃 '감상'

목동교며 오곡교 등 모든 다리 밑은 거의 숙박지 혹은 쉼터였다. 사람들은 시원한 다리 밑에서 네 활개를 펴고 잠을 자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떠들썩하게 웃어댄다. 간혹 막걸리를 가져다 놓고 불콰해져서 술김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갑돌이 아저씨도 없지 않았다.

둑방에 조성된 꽃길은 안양천을 걷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신정1교 인근 넓은 공터에서 조성해 놓은 자연학습장에서는 노랑줄무늬 비비추, 하늘매 발톱, 왕애주기, 하늘 용담. 후룩스매혹, 야스타 춘추, 매직 카펫, 노랑 숙근 코스모스처럼 이름도 진귀한 꽃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한강 합수부에서 신정 1교까지는 5.2km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도림천을 만난다. 이 길을 쭉 걸어가면 구로디지털단지역, 대림역, 신도림역이 나온다. 이 천은 전철 다리 밑으로 흐르는데, 그리 쾌적한 지역은 못된다. 물이 많이 맑아졌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악취가 나는 곳도 적지 않으며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 심지어 지난해 홍수 때 걸린 마른 수초가 아직도 걸려 있을 정도이며, 일부 구간에는 지린내가 등천을 하기도 한다.

신정 1교에서 바로 가면 목감천 시점인 구일역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금천 벚꽃길과 나란히 둔치길이 이어진다. 기아대교를 지나 직진하면, 안양천과 학의천이 만나는 합수부가 나온다. 합수부에서 직진하면 안양천, 왼쪽으로 꺾으면, 백운호수로 이어진 학의천 길이다. 안양천은 삼천리 자전거와 대나무 숲, 의왕시청 부근을 지나 의왕소방서 앞 고천 제3교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