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85 나주정씨(羅州鄭氏)
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85 나주정씨(羅州鄭氏)
  • 정복규
  • 승인 2013.04.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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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정해,후손들이 나주에 정착하면서 본관으로 삼아
정가신.정지.정초.정여린.정광훈.정승조.정종연등이 후손


나주정씨(羅州鄭氏)의 시조 정해(鄭諧)는 고려 중엽 때 사람이다.

그의 증손 정가신(鄭可臣, 1224~1298)이 고려 고종 때 문과에 올라 수사도(守司徒)를 지낸 뒤 군기감에 추증됐다.

그 뒤 후손들이 나주에 정착하면서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정가신(鄭可臣)은 나주 사람으로 자는 남헌, 호는 설재(雪齋),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그는 전남 나주시 동강면 시중동(지금의 인동리)에서 향공진사(鄕貢進士) 정송수(鄭松壽)의 아들로 태어나 금안동에서 자랐다.

어려서 승려 천기(天琪)를 따라 상경해 1259년(고려 고종 46) 문과에 급제해 1277년 (충열왕 3) 보문각대제가 되고 정녕공에 봉해졌다.

정지(鄭地, 1347-1391)는 고려의 무신이다.

1374년(공민왕 23) 중랑장으로 왜구를 평정할 방책을 왕에게 올려 전라도 안무사가 됐다.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때 공을 세워 2등공신이 됐다.

정가신의 증손인 정초(1344~1423)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교리, 호조판서를 지냈다.

정가신의 5세손 정식(1407~1467)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우승지, 함길도도관찰사를 거쳐 여진족 정벌에 공을 세워 자헌대부에 올랐다.

예조판서를 지낸 정국(鄭菊)과 이조정랑을 지낸 정심(鄭諶, 1520~1602), 부사를 역임한 정상(鄭詳.1533~1609), 임진왜란 때 용맹을 떨쳐 비장군(飛將軍)으로 일컬어진 정여린(1564~1640) 등도 있다.

가의대부에 올라 사정(司正)과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정기수와 수군방어사를 지낸 정봉수, 병조참판에 추증된 정 응(鄭應), 정 란(1583~1656), 정 눌(鄭訥) 등도 가문을 대표하는 후손들이다.

현대 인물은 정광훈(JMI회장, 나주정씨(羅州鄭氏)대종회장), 정승조(37대합참의장), 정병길(농협지점장), 정종연(시인), 정기수(함평향교전교), 정수(공군준장), 정기승(스마트저축은행장, 금융감독원은행감독국장), 정병재(서울금천구의회의원), 정철주(전남무안군기초의원), 정진호(변호사), 정경현(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장), 정광춘(잉크테크대표), 정선재(인천지검 부천지청검사), 정광주(한국미술협회 광주시지회장), 정대연(아동문학가, 한국문인협회부이사장), 정성진(육군권율부대장, 제60사단장)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표(行列表)는 28세 균(均) 연(衍), 29세 종(鍾) 무(茂), 30세 수(洙)범(範), 31세 상(相) 광(廣), 32세 렬(烈) 기(奇), 33세 재(在) 희(喜), 34세 호(鎬) 규(揆), 35세 영(永), 36세 식(植), 37세 대(大), 38세 규(奎) 이다.

주요파는 호군공파, 소윤공파, 상서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전북 장수군 장계면 금곡리, 전남 무안군 몽탄면 양장리, 전남 나주시 동강면 양지리, 전남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천리, 전남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전남 무안군 청계면 서호리, 충남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54명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93,845명이다.

서울 21,498명, 부산 5,326명, 대구 3,576명, 인천 5,506명, 광주 6,697명, 대전 2,332명, 울산 1,344명, 경기 19,415명, 강원 2,263명, 충북 2,084명, 충남 4,018명, 전북 3,586명, 전남 7,980명, 경북 3,551명, 경남 4,011명, 제주 658명이다.

1985년과 광주,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다.

한편 나주정씨는 한자가 다른 나주정씨(羅州鄭氏)와 나주정씨(羅州丁氏)가 있다.

한글 성이 같아 구분이 어려운 데다 인구도 비슷해 더욱 혼란스럽다.

2000년 현재 나주정씨(羅州鄭氏)는 93,845명, 나주정씨(羅州丁氏)는 82,863명으로 정(鄭)씨가 10,982명 더 많다.

그러나 1985년에는 나주정씨(羅州鄭씨) 55,684명, 나주정씨(羅州丁씨) 62,554명으로 정(丁) 씨가 6,870명 더 많았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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