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제국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통일제국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 황미숙
  • 승인 2012.04.3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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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시황 영정의 모신(謀臣), 이사(李斯)
이사(李斯, ~ B·C 208)는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서 법치사상을 강조한 순자(荀子)의 제자였다.

출세를 위해 진나라로 가서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다.

이후 진(秦)의 객경이 되어 시황제를 도와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한 후에 승상이 되어 모든 권력을 군주에게 집중시키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의 기틀을 만들어 나갔다.

기원전 208년, 한나라 정국(鄭國)이란 인물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 땅을 곡창지대로 만들겠다며 인공운하를 만들자고 진언하자 채택되어 공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국이 사실은 한나라가 파견한 첩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나라의 속셈은, 진나라에 전대미문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켜서 스스로 국력을 소진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국의 정체가 탄로 나자, “타국 출신의 관료들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

”며 진나라는 소용돌이에 빠졌다.

진나라는 타국출신의 인재를 기용하여 관료가 된 인물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더욱 사건은 확대될 조짐을 보였다.

이사는 축객령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명을 물릴 것을 호소하는 ‘축객령에 간(諫)한 글’이라 하여 ‘간축객서(諫逐客書)’라 불리는 유명한 글을 남긴다.

결국 축객령은 폐지되었다.

그리고 정국은 첩자 노릇을 관두고 공사에 최선을 다해 운하를 완벽하게 완성시킨다는 조건 하에 처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위도 그대로 두었다.

현재까지도 ‘정국거’라는 이름으로 남겨졌다.

이렇듯 진나라는 이사나 정국 같은 타국 출신의 책사, 기술자들을 등용함으로써 패업을 이룬 나라가 되었다.

이사는 통일이후에 전국을 36개의 군으로 나누어 제도를 개혁하고 황제의 명령이 일사분란하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이사에 의해 주도적으로 실행된 군현제는 신해혁명이 일어나기 까지 이어졌다.

통일 직후에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반대할 수 없었던 이들이 주의 봉건제로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이사는 방치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것을 염려하였다.

순우월이 대표로 하여 분봉제를 주장하자 이사는 순우월이 옛것을 중시하고 현재를 경시하는 경향은 고서(古書)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분서(焚書)를 건의하였다.

한나라 유학자로부터 오늘날까지 분서갱유(焚書坑儒)는 매우 야만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사기』에 이사가 진언한 분서 관련 내용에 의하면 박사관(博士官)이 주관하는 서적과 의약(醫藥), 점복(占卜), 종수(種樹) 등 과학기술 서적은 제외하였다.

사관에게 명하여 진(秦)의 전적(典籍)이 아닌 것은 태우고, 민간에서 소유하고 있는 책을 거두어 태우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분서를 한 2년 뒤에 함양에서 저잣거리에서 시서(詩書)를 이야기하거나, 옛것으로 지금을 비난하는 자 등 법령을 어긴 자 460여 명을 산 채로 매장하는 이른바 ‘갱유(坑儒)’를 단행했다.

『사기』의 사마천은 이사에 대하여 그 공적이 주공(周公)에 비견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주살(誅殺)을 면치 못하였다며, 그 결정적 과오는 역시 윗사람의 의중을 그 자신보다 먼저 헤아려 영합하기에 급급하였고, 스스로 공명정대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사는 시황제가 죽은 뒤 조고(趙高)와 함께 장자 부소(扶蘇)를 시해하고 2세 황제 호해(胡亥)를 옹립하고서 조고의 참소로 처형당하고 만다.

이사의 일생은 일찍이 스승인 순자가 염려한 대로 자신의 권세와 부귀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절제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이다.

이사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어릴 때에 아버지와 더불어 시골에서 토끼몰이 사냥하던 때가 행복했었다.

”라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속이려했던 이사는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 하는 말은 과연 착했던 것인가. 《맹자》 진심 상에서 맹자는 “無恥之恥 無恥矣(무치지치 무치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 라고 하였다.

가장 부끄러운 것이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원칙 없는 정치에 출발한 정책으로 빚어진 노동 없는 부는 양심 없는 쾌락을 즐기고, 인격 없는 교육은 도덕심 없는 경제 발전에 편승해서 인간성 없는 과학의 힘을 얻어 백세를 살아간다.

우리는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