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제국과 덧없는 불로장생의 꿈
불멸의 제국과 덧없는 불로장생의 꿈
  • 황미숙
  • 승인 2012.04.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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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진시황 영정과 상국 여불위(呂不韋)
춘추·전국시대(B·C770~B·C221)를 마감하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이가 진시황이다.

아버지 자초(子楚)가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볼모로 가 있을 때 진(秦)이 여러 차례 조를 공격했으므로 조나라는 자초를 우대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진 왕실의 서손(庶孫) 중의 한 사람이라 생활이 궁핍하였다.

한(韓)나라 양책(陽翟)의 큰 상인이었던 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35)가 자초에게 현재 진나라 왕실 내부형세를 말한 뒤 자초가 장차 태자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써보겠다고 말했다.

자초는 여불위의 말에 감동하여 “만약에 당신의 계획대로 된다면 진나라를 그대에게 나누어 주겠소.”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사기』「여불위열전」에 전한다.

여불위는 진나라로 가서 태자인 안국군(安國君)이 총애하던 화양부인(華陽夫人)의 언니를 만난다.

그녀를 설득하여 화양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는 결국 자초를 화양부인의 양아들로서 안국군의 후계자가 되게 하였다.

어느 날 자초는 여불위가 초대한 술자리에서 여불위 애첩인 조희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자신에게 양보해 줄 것을 청했다.

여불위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기꺼이 자초에게 바쳤다.

이때 조희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열두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후에 진시황이 되는 영정(?政)이다 6년의 세월이 흘러 진소왕이 죽고 안국군이 보위에 오르니 그가 진 효문왕(秦 孝文王)이다.

그는 화양부인을 왕후로, 자초를 태자로 봉했다.

조나라 왕은 자초와 잘 지내고자 그의 처자를 진나라로 돌려보냈는데 당시 정의 나이는 9살이었다.

진소왕이 56년을 재위하다 보니 그의 아들 효문왕은 53세가 되어서야 등극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음으로, 자초가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바로 진 장양왕(秦 莊襄王)이다.

보위에 오른 그는 화양부인을 태후로 봉하고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아 문신후(文信候)에 봉하고 하남 낙양(洛陽)의 10만 호를 식읍으로 주었다.

모든 것이 여불위의 계획대로 된 것이다.

장양왕이 즉위 3년 만에 서거하고 태자 정이 왕위를 이었다.

진시황은 이때 나이 13세(기원전 247)였다.

그는 여불위를 높이어 상국(相國)으로 삼고 중부(仲父)라 불러 우대했다.

여불위는 천하의 인재를 초빙하여 우대하니 식객이 3천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시황의 탄생에 관련 이야기는 여불위가 거상이었음으로 더욱 신비로움이 더해진 듯 한 느낌을 갖는다.

이후 여불위가 집정한 12년 동안 진나라의 군사력은 크게 신장하였고, 진이 천하를 통일한 후 얻은 총 군(郡) 수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얻는 등 천하통일에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영정은 즉위 후 10년간을 여불위의 그늘 아래서 서서히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기원전 238년, 여불위의 수하였던 노애의 반란을 계기로 기회를 잡은 영정은 여불위를 압박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듬해인 여불위가 자결함으로써 비로소 영정의 시대가 열리었다.

그러나 그는 불멸의 제국건설과 영생을 향한 끝없는 꿈을 꾸게 된다.

덧없는 불로장생의 꿈을 꾼 시황제는 여산릉을 만들어 놓고 불로초는 구하지도 못하고 죽는다.

진시황은 중국 전역을 36개 군으로 나누고, 각 군에 황제가 임명한 관리를 파견하여 행정을 담당하게 해 권력의 중앙 집중화를 꾀하였으며, 동시에 도량형, 화폐, 거궤(車軌), 문자를 통일하는 등 사회, 경제, 문화 제도까지 정비 통합하였다.

이렇듯 강력한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7국으로 병립해 있던 전국시대의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전면적 개편을 단행함으로써 중앙집권형의 대제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통일제국은 탄생했지만, 진시황제부터 시작된 무리한 토목공사도 진의 단명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통일된 후에는 조세 부담이 무려 20배로 늘었다고 백성들이 불평할 정도였다.

강력한 제도를 통해 백성을 다스렸던 통일 진나라는 15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진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道之以政(도지이정) 齊之以刑(제지이형)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 정치로써 백성을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이 형벌은 면하여도 부끄러운 마음은 없어진다.

’ 고 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살던 땅에서 어느 나라 백성이든 어제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조차 불필요 한지 모른다.

단지 오늘을 살기 위해 밥벌이에 목줄을 매달고 있기에 인의(仁義)도 좋고 법술(法術)도 좋다.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가 권력을 잡는가 보다 개인의 삶을 존중 받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혹 그렇다면 민초들도 불로장생을 꿈꾸려는가. 바람이 있다면 내 앞마당에 잔디가 밟히더라도 씨앗을 머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