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한국성씨를 찾아서❼-진주강씨(晋州姜氏)
정복규의 한국성씨를 찾아서❼-진주강씨(晋州姜氏)
  • 정복규
  • 승인 2011.07.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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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수나라 군사 30만을 격퇴한 고구려 용장 강이식
강감찬등 숱한 장군 배출… 강희안·강희맹 등 문장가도

우리나라 모든 강씨(姜氏)의 시조는 고구려 때 용장 강이식(姜以式)이다.

고구려 영양왕 8년(서기 597년) 중국 수나라는 고구려에 국서를 보낸다.

“상국(上國)인 수나라에 지성과 충절을 소홀히 한다”는 방자한 내용이었다.

이 때 강이식은 “이같이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

”고 말한다.

왕은 이를 흔쾌히 받아 들였고 강이식은 정예병력 5만 명으로 수나라 군사 30만 명을 요동 땅에서 격퇴한다.

그는 또 살수대첩 때 을지문덕과 함께 수양제의 1백만 대군을 무찌른다.

강이식 묘소는 만주 봉길선 원수림 역 앞에 있으며, 음력 4월 10일에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봉산사에서 제사를 지낸다.

그의 후손인 강진이 진양(진주)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진주강씨는 후대에서도 숱한 장군을 배출했다.

‘해동의 명장’이라 일컫는 구주대첩의 강감찬 장군과 자주대첩의 강민첨 장군이 대표적 인물이다.

강희안은 집현전 직제학이 되어 정인지, 성삼문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그의 동생 강희맹 또한 당대의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불운한 무장 강홍립도 진주강씨의 후손이다.

강세황은 정조 때 시서화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다.

강항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 공조. 형조좌랑 등을 지냈다.

진주강씨는 해방 이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강영훈(전 국무총리), 강인택(전 체신부장관), 강성태(전 상공부장관), 강서룡(전 교통부장관), 강경식(전 재무부장관) 등은 관계의 인물이다.

강신호(동아제약회장), 강정준(백화양조회장), 강성진(삼보증권사장), 강구진(오리엔트시계사장), 강계중(광일상사사장, 재일거류민단 상임고문), 강진구(삼성전자사장), 강원명(태평양화학고문), 강남형(해태제과사장), 강석진(전 동명목재 회장) 등은 재계의 인물이다.

법조계에는 강우영(전 대법원판사, 변호사), 강안희(전 대법원판사, 변호사), 강용구(변호사), 강달수(변호사) 등이 있다.

국회의원은 전 현직을 포함하여 40여 명에 이른다.

강신명 목사(숭전대 총장), 강원룡(경동교회 명예목사), 강석주 스님(전 조계종총무원장, 승가대학원장)은 종교계에 우뚝 서 인물들이다.

군에는 강기천(전 해병대사령관), 강문봉(전 육군중장) 등이 있다.

한국고전무용의 독보적인 존재 강선영, 탤런트 강부자, 영화감독 강대진, 아동문학가 강소천 등도 후손이다.

학계에는 강구식(서울대법대 교수), 강문주(경제학박사, 중앙대부총장), 강병근(정치학박사, 연세대 법정대학원장), 강주진(전 국회도서관장), 강병규(정치학박사, 한성대학장), 강두식(서울대교수, 독문학) 등이 있다.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강재구 소령도 후손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됐음) 집성촌은 경남 진주시 일원, 경남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경남 남해군 이동면 화계리, 경북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경북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 전북 순창군 팔덕면 용산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일원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907명이다.

문과 223명, 무과 144명, 사마시 512명, 역과 16명, 의과 8명, 음양과 3명, 주학 1명 등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966,710명이다.

서울 189,210명, 부산 98,420명, 대구 39,152명, 인천 44,335명, 광주 29,029명, 대전 29,172명, 울산 20,480명, 경기 163,495명, 강원 19,989명, 충북 23,170명, 충남 35,872명, 전북 45,552명, 전남 48,970명, 경북 48,172명, 경남 104,789명, 제주 26,90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