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靑지시받은 적 없어, 소신껏 했다”
“그동안 靑지시받은 적 없어, 소신껏 했다”
  • 장덕중기자
  • 승인 2011.05.05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무성 ‘대화와 타협의 정치모델’ 실현하고 물러나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사진>가 1년간의 임기를 ‘화합형 대표’로 성공리에 마치고 4일 ‘원내 사령탑’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통 의회주의자’를 자임해 온 4선의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4일 당 의원총회를 거쳐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된 후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와 환상의 호흡을 이루며 선 굵은 정치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탁월한 당 장악력과 협상력을 발휘, 당 소속 의원들을 통솔하는 한편 카운터파트너인 박지원 원내대표와 잦은 접촉을 가지며 ‘대화와 타협’의 여의도 정치를 일정 수준 복원했다.

이 때문에 세종시 수정안과 집시법(집회 및 시위법) 등 민감한 현안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공격형 원내대표들이 포진돼 전쟁터를 방불하는 전투가 벌어졌던 18대 전반기에 비해 비교적 파열음 없는 원내 운영에 성공했다.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때는 갈등을 인위적으로 봉합하려 하기 보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정부 측이 강하게 세종시 수정 요구를 해왔을 때는 이를 무리하게 관철하기보다는 의원들이 소신 투표를 하도록해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김 원내대표는 재임 중 박 원내대표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 예방 및 치료법 ▲유통산업발전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서해 5도 지원특별법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인정보보호법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 무려 1335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그 결과 지난 12월7일에는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와 나란히 ‘백봉신사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며 제헌의원,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정치는 타협’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선이 굵고 호방한 정치가 특징이어서 별명이 ‘부산 사나이’다.

지난해 6·2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지도부 일괄사퇴로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하고 청와대와 긴밀한 접촉을 가지며 새로운 주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7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민간인 사찰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에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또 8월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 지도부에게 당내 계파 해체를 권고한 후 자신도 여의포럼에서 탈퇴했다.

8월24일에는 정부측에 당정회의가 그동안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주요정책이 당정회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되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결과 30일 열린 당정회의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정부부처 장관 모두가 참석했다.

지난 1년간 한나라당 뿐 아니라 청와대 정부, 야권을 넘나들며 잰 발걸음을 해온 그는 사석에서 “원내대표의 임기가 1년이라 다행”이라며 “좀 쉬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4·27 재보궐선거 참패로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한 한나라당에서는 계파색이 옅고 당 장악력이 있는 김 원내대표가 새로운 간판으로 나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향후 그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