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본질 上] 홍콩 ELS 배상기준안 '절반의 성과'…근본 해결책 부족
[투자의 본질 上] 홍콩 ELS 배상기준안 '절반의 성과'…근본 해결책 부족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4.03.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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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대규모 투자 손실 사태…고위험 상품 근본·구조적 대책 절실
이자이익 비판으로 인한 비이자이익 확대 압박 등 금융환경 재정비 필요
(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 이후, 올해 또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 H지수) 추종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터졌다. 금융당국이 관련 배상안을 마련하고 제도 개선을 진행 중이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권 완전 판매 노력과 함께 투자자 역시 '투자의 본질'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투자는 원금 손실 등 위험을 항상 동반하며, 최종 책임 역시 투자자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피땀으로 모은 재산을 한순간의 선택과 실수로 잃는 악순환이 없도록 최근 투자 손실 사태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금융감독원(금감원)의 홍콩 H지수 ELS 배상안 기준이 윤곽을 드러낸 가운데, 판매사 불완전판매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노력은 엿보이지만, 고위험 상품 판매와 관련한 근본적 해결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여기에 감독당국이 내놓은 기준안 자체도 금융권에 기댄 사태 수습이어서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12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홍콩 H지수 ELS(ELT·ELF 포함) 판매 잔액은 총 18조8000억원이다. 

전체 잔액 80.5%(15조1000억원)의 만기는 올해 도래한다. 분기별로는 1분기 3조8000억원(20.4%), 2분기 6조원(32.1%) 등 상반기에 집중됐다.

올해 1~2월 현재 만기도래액은 2조2000억원(은행 1조9000억원, 증권 3000억원)으로 총손실 금액은 1조2000억원(은행 1조원, 증권 2000억원), 누적 손실률은 53.5%에 달한다. 

이에 금감원은 전날인 11일 배상액 근거가 될 홍콩H지수 ELS 분쟁조정 기준안(이하 기준안)을 발표했다. 

기준안은 배상 비율에 대해 별도 상·하한선을 두지 않고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 판매 원칙 위반 정도와 판매 정책 및 소비자 보호 체계 부실에 따른 '판매사 요인(23~50%)' △판매사 금융취약계층 보호 소홀, 투자자 과거 ELS 투자 경험과 금융상품 이해도 등 판매사와 투자자 과실 사유에 따른 '투자자 요인(±45%)'을 적용키로 했다.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대규모 투자 손실 사태로 인해 마련된 배상안(손해액의 40~80% 수준)과 비교하면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이 종합적으로 반영됐다는 점에서 감독당국의 고심이 깊었다는 평가다. 

다만 이론상으로는 투자자 손실액을 전혀 배상하지 않는 수준(0%)에서 전액 배상(100%)까지 범위가 넓어졌지만, 절차상 흠결이 없었고 투자자 투자 성향과 이력 등에 따라 배상 비율도 줄 수 있는 만큼 실제로는 20~60%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배상 수준은 다소 축소됐다는 쓴소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여기에 비교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용자가 다수인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상황에 대해 그동안 금융당국의 감독 소홀이 이번 ELS 사태를 키웠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DLF 사태 당시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해서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 이상인 고위험 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다만 투자자 보호 강화 노력을 조건으로 대표적인 지수 연동형 공모 ELS 판매는 허용했는데, 홍콩H지수 ELS 상품에 대규모 투자금이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해당 ELS 상품 총판매 계좌는 39만6000건, 판매 잔액은 18조8000억원인 상황에서 은행이 24만3000계좌(15조4000억원), 증권사 15만3000계좌(3조4000억원)으로 주로 은행 거래가 많았던 점이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금융당국도 이번 ELS 손실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단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에서만큼은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 판매는 금지해야 한다"며 "투자의 3대 원칙은 수익성과 안정성, 환금성인데 고금리, 고물가 상황에서 특히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안전성"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 정부가 은행의 주된 수익인 예대금리차에 대해 '이자 장사'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비이자이익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상황이 계속된 점도 은행의 고위험 상품 취급을 늘리는 데 일조했단 분석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원칙적으로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지만, 은행 영업점에서 고위험 상품을 고령, 투자 경험이 낮은 소비자에게 판매한 게 문제"라면서도 "은행 이자 장사를 비판하며 비이자 수익 창출을 압박한 당국도 귀책 사유에서 벗어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렇다보니 '금융 상품을 어떻게 팔았다' 등 완전 판매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과 함께 금융사는 물론 당국 역시 고위험 상품 투자와 관련한 투자자 금융 지식 향상과 판매 환경 재정비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한편 은행 등 판매사 스스로 고위험 상품 취급 시 이에 따를 수 있는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자기 책임을 한층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만큼 당국이 보상안 기준을 제시한 것 자체로 유의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채상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비교적 자유로운 투자 상품 판매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대규모 소비자 피해 등 불법적인 원인 발견 시 기업이 무너질 수 있는 정도의 책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에서 모든 투자 상품에 대한 문제를 미리 예견해 규제 제도를 마련하기 어렵고 은행도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금융당국의 보상안 기준 제시는) 선진국형 규제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일련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