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vs병원이탈' 나흘째…정부 엄정 대응 '무색'
'의대증원vs병원이탈' 나흘째…정부 엄정 대응 '무색'
  • 김태형 기자
  • 승인 2024.02.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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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74.4% 사직서 제출
"앞으로 일주일 고비…이후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질 것"
지난 22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로 이송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로 이송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엄정 대응 방침이 무색하게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병원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74.4%인 9275명이 지난 21일까지 사직서를 냈다. 근무지 이탈자는 소속 전공의의 64.4%인 8024명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의사면허 정지'를, 법무부는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내세우며 압박에 나섰지만,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선배 의사들의 협의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을 두고 "집단행동이 아니다. 후배들의 자유로운 결정이고, 이를 지지한다"며 힘을 싣고 있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환자들은 '의료대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대규모 이탈에 따라 전체 수술을 최소 30%에서 50%까지 줄인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각 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을 동원해 채우고 있다. 야간 당직 등에 교수를 배치하고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고비가 될 수 있다"며 "그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직장암 3기로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항암 치료가 종료된 지 두 달 만에 간으로 암으로 전이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는 한 환자는 "지난 20일 입원, 21일 수술 예정이었는데 취소됐다"며 "시기를 놓쳐서 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지방에서는 치료받을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수백㎞를 떠돈 환자 사례도 나왔다.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21일 오전 11시 30분께 당뇨를 앓는 60대 A씨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괴사가 일어나 119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전공의 부재로 수술이 어렵다며 병원 측이 이송을 권유하자 길거리를 떠돌다 3시간 30분 만에 치료받은 사례가 있었다.

현장에 남은 의료진도 업무 과중에 시달린다.

광주 전남대병원의 한 의료진은 "병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전공의가 해온 유치 도뇨관(소변줄) 삽입 업무를 하게 된 남성 간호사도 있다"며 "추가 근무야 당연지사고, 점심 먹을 시간도 촉박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의료진은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정부와의 정책 갈등을 줄이고,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업무에 복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thkim7360@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