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한국전쟁기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서산시, 한국전쟁기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 이영채 기자
  • 승인 2023.05.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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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개토제
10일 오전 11시 서산시 갈산리 봉화산 교통호 인근
유가족 대표 등 참석
사진은 2021년 유족회가 유해발굴 시굴시 일부 확인된 정강이뼈 모습.(사진=진실화해위원회)
사진은 2021년 유족회가 유해발굴 시굴시 일부 확인된 정강이뼈 모습.(사진=진실화해위원회)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충남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관련 유해발굴에 나선다.

한국전쟁기 충남 서산 지역에서 집단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 영령들을 위로하고 유해발굴 사업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유해발굴 개토제가 오는 10일 오전 11시 진실화해위 및 유가족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충남 서산시 갈산리 봉화산 교통호 인근에서 열린다.

9일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 지역의 매장 추정 유해는 모두 2,000여 구이며, 진실화해위원회는 약 8,000만원의 예산으로 6월 중 유해발굴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유해발굴은 진실화해위원회 발굴 용역을 맡은 (재)동방문화재연구원에서 수행한다.

서산 갈산리 교통호 지역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경찰과 치안대 측 참고인 진술에 따르면 해군, 서산경찰서와 태안경찰서 소속 경찰이 수복 후 치안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부역자를 일제히 검거한 후 경찰서와 지서 유치장 그리고 읍·면사무소 창고에 구금한 후 이 중 다수를 최소 30여 곳에서 집단 살해했다고 진술한 지역 중의 한 곳이다.

갈산리는 사건 발생 당시 서산군 인지면에 속해 있었고, 현재는 서산시 부춘동에 속해 있다. 갈산리는 당시 행정구역상 서산읍 읍내리와 경계상에 있었기 때문에 서산읍 부역혐의자들이 이곳에서 집단 살해됐다. 갈산리 교통호는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판 곳이다.

2008년 위원회에서는 서산 갈산리 교통호 지역에 대해 총살 목격자 최○○, 이병주, 김○○, 노○○ 등과 시신수습자 조한욱, 이창구와 함께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목격자와 경찰의 진술을 통해 수복 후 갈산리 교통호에서는 최소 다섯 번에 걸쳐 수백 명의 민간인이 서산경찰서 소속 경찰에게 집단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목격자 한○○ 증언에 의하면 20일간 매일 5대 정도의 트럭에 부역혐의자로 보이는 민간인을 싣고 와서 갈산동 방공호에서 이들을 집단학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공호 주변에 흰 천이 둘러쳐진 날이면 항상 총소리가 들렸고, 일대 방공호(깊이 1.6미터)에서 피가 넘쳐 흘러 내려왔으며 들개가 사체 조각을 물고 다닐 정도로 시신이 널려 있었고, 방공호 안에도 시체가 가득 차 썩은 냄새가 진동해 이후 경찰은 마을 청년을 동원해 사체 매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해 발굴의 관련 사건인 ‘서산·태안 부역혐의 희생사건’은 2008년 위원회 조사를 통해 1950년 10월 초순부터 1950년 12월 말경까지 서산경찰, 태안경찰서 소속 경찰과 해군에 의해 충청남도 서산군 인지면 갈산리 교통호 등 최소 30여 곳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된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977명이고, 희생추정자는 888명에 달한다. 위원회는 조사 결과 최소 1,86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40대의 성인 남성들이었으며, 여성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 

한편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실효성 있는 유해발굴과 위원회 종료 이후, 유해발굴 사업이 지속되도록 지난해 7월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최종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근거로 전국 6개 지역 7곳을 선정해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신아일보] 이영채 기자

esc13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