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시 나온 '빚내서 집 사라'
[기자수첩] 다시 나온 '빚내서 집 사라'
  • 남정호 기자
  • 승인 2023.05.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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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로 인한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피해자들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전세 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내놨다.

특별법에는 피해자들이 현재 거주 중인 주택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2년간 부여하고 매입 자금에 대한 저리 대출과 대출 규제 완화 등 금융 지원을 해주는 방안이 담겼다. 우선매수권 행사가 어려운 피해자의 경우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를 양수해 해당 주택을 매입하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최장 20년간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피해자들이 현재 살고 있는 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에 다시 '빚내서 집 사라'를 꺼내든 셈이다.

문제는 전세 사기로 목돈을 날린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통해 집을 살 수 있는 피해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전세대출에 매입자금 대출까지 빚에 빚을 더하고 얼마나 더 침체를 이어갈지 알 수 없는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이 시세차익을 통해 기존 자본을 회복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은 향후 부동산 시장 움직임에 따라 하우스푸어 양산 등 부동산 및 가계부채 부실 뇌관이 될 여지도 있다. 이 경우 피해 규모는 현재보다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자산 가치 상승을 노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준말)로 인한 하우스푸어가 부동산 가격 하락기마다 문제가 되는 게 현실이다.

전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전세 사기 특별법안 3건을 병합심사했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여야가 특별법상 피해자 인정 범위와 '선구제-후회수' 방안 포함 여부 등을 두고 이견을 보여서다. 

야당과 피해자 대책위가 주장하는 선구제-후회수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공공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해 피해자들을 선구제하고 추후 이를 회수하자는 안인데 정부는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형평성으로 인해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나 보전을 할 수 없다면 보증금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권 등 현행법상 존재하는 제도들을 현실화해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일단 긴급 처방으로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를 유예, 중지해 피해자 구제를 위한 얼마간 시간을 벌었다. 조속한 구제를 위한 발 빠른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의 추가 피해 여부도 면밀히 살펴 더 많은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특별법과 촘촘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sout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