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벗은 '뮤지컬 베토벤'… 불멸의 사랑과 가능성 노래하다
베일벗은 '뮤지컬 베토벤'… 불멸의 사랑과 가능성 노래하다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3.02.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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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미하엘 쿤체,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7년의 준비기간 거쳐
섬세하고 웅장한 연출 압도... 서사 개연성, 극적긴장감은 다소 아쉬워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소리는 귀에서 사라졌지만 음악은 마음에 남았다. ‘괴짜 음악가’, ‘귀머거리 지휘자’로 불렸던 천재음악가 베토벤의 이야기다.

베토벤의 사후 서랍장에서 발견된 어느 ‘불멸의 연인’을 향한 편지에서 출발한 뮤지컬 ‘베토벤’이 7년의 긴 준비 기간을 마치고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2일 EMK뮤지컬컴퍼니에 따르면 뮤지컬 ‘베토벤’은 뮤지컬 ‘레베카’, ‘모차르트’ 등 세계적인 흥행 대작을 빚어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EMK와 함께 7년 동안 연구하고 발전을 거듭해 내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대를 관통하는 선율로 ‘천재’, ‘거장’의 칭호를 얻었지만 단 한 순간의 평범한 행복도 허락되지 않았던 음악가 베토벤의 음악적 고뇌와 사랑을 담았다.

극 중 베토벤이 사랑을 깨닫게 된 후 고뇌하며 부르는 ‘사랑은 잔인해’의 가사와 대사 곳곳에는 불멸의 연인에게 작성한 편지의 문장을 녹여내 실재감을 더했다.

7년의 작품 준비 기간이 소요된 만큼 연출은 압도적이다. 프라하의 명소인 카를교를 비롯해 19세기의 오스트리아 빈의 모습을 웅장하게 구현해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베토벤의 마음을 ‘벽’으로 시각화한 아이디어는 탄성을 자아낸다. 극초반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려있던 두꺼운 벽은 베토벤이 귀족 여인 안토니 브렌타노(토니)와 사랑에 빠지며 열린다. ‘사랑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던 베토벤이 사랑을 깨달으며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과정을 심미적으로 표현했다.

베토벤의 인생과 뗄 수 없는 피아노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피아노는 베토벤의 음악은 물론, 청력을 잃어가는 순간이나 애절한 이별의 순간 등 서사의 전개에 따라 배치됐다.

베토벤이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르는 장면에서는 피아노를 허공에 매다는 과감한 무대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베토벤의 음악을 ‘음악의 혼령’으로 재해석해 현대적인 안무로 승화한 것 역시 신선했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 평가받는 교향곡 3번 Op.55(영웅 교향곡), 교향곡 5번 Op.67(운명 교향곡)을 비롯해 피아노 소나타 8번 Op.13(비창), 피아노 소나타 14번 Op.27-2(월광) 등 명곡들은 유럽 뮤지컬의 전설 실베스터 르베이의 손길을 거쳐 서사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배우들의 열연도 눈에 띈다. 뮤지컬 베토벤은 박효신, 박은태, 카이, 옥주현, 조정은, 윤공주 등 정상급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과 가창력은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박효신은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고 카이는 극심한 콤플렉스로 인한 방어기제로 괴팍한 성격을 갖게 된 예술가적 면모를 제대로 표현했다. 박은태는 예민하면서도 도도한 음악가 베토벤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무대 피아노 위에 우뚝 서 열정적으로 음악을 지휘하는 베토벤의 모습은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베토벤과 가정이 있는 토니의 불멸의 사랑을 충분히 공감하기에는 이야기가 빈약했다. 귀족들로부터 무시당하던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봐준 토니에게 사랑을 느끼는 장면이 있지만 영혼과 삶을 뒤흔들 만큼의 운명적인 진동을 느끼기에는 서사의 힘이 부족했다.

물론 ‘두 사람은 무수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인 사랑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극을 끌고 갈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선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를 절묘하게 배치해 극적긴장감을 높여야 하는데 이 또한 부족했다. 토니의 남편이나 아이들의 존재는 그저 토니가 결혼한 사람이라는 설정을 보여주는 데 그쳤고, 조연들은 그저 곳곳에 배치돼 있을뿐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뮤지컬 베토벤은 초연이기에 훌륭했고, 또 아쉬움이 있었다. 분명한 건 초연이기에 발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이미 수준 높은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증명된 만큼 이야기의 개연성과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요소를 가미한다면 국내 대표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해 보인다.

한편, 뮤지컬 ‘베토벤’은 KOPIS(공연예술통합전산망) 기준 월간, 주간 유료티켓판매수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개막 이후 단 18회의 공연 만에 점유율 84%, 관객 수 3만명이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