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위기의 은행] 라방·배달 생태계 확장…'팔방미인' 전성시대
[창간특집-위기의 은행] 라방·배달 생태계 확장…'팔방미인' 전성시대
  • 임혜현·문룡식·박정은 기자
  • 승인 2022.06.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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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긴축 속 금융권 긴장감 고조…새 수익원 창출 '고군분투'

국내 은행은 미국이 강도 높은 긴축 궤도에 오르면서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이자 수익을 누렸지만 잔치는 끝났다. 금융권의 돈줄이 죄어드는 가운데 새 수익원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주요 은행은 라이브방송을 마련하는가 하면, 배달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본지는 180도 달라진 경영환경에서 ‘팔방미인’이 살아남는 시대에 홀로선 은행들의 생존기를 좇았다. <편집자주>

은행권을 중심으로 달콤한 이자 마진 시대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가장 첨예한 두뇌싸움 영역은 디지털 금융, 즉 빅테크(온라인 플랫폼에서 금융으로 사업을 확장한 업체)와의 경쟁이 꼽힌다. 주요 은행은 이를 위해 내부에서 머리를 맞대고 공감대 형성에 공들이고 있다. 

◇금융사 규제 완화, 혁신금융시스템 승차

윤석열 정부는 기존 금융권에서 요구해온 규제 완화를 110대 국정과제에도 일정부분 반영하면서 금융사에 대한 규제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은행연합회가 새 정부 출범 전 인수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마련했던 정책제안서 초안도 은행권의 사업과 서비스 범위를 기존보다 늘리고, 가상자산 서비스 진출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 골자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빅테크들이 금융사업을 영위하는 상황 자체를 비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 대신 이제 ‘빅블러’ 시대에 적합한 방향으로 은행들의 업무 범위를 바꾸려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종합금융플랫폼 구축을 제약하는 제도적 장애 요인을 해소해 달라고 당국에 요구하는 것이 새 관심사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빅테크와 여러 서비스를 두고 제대로 붙어보면 승산이 아예 없지 않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비이자수익 한계 도달, '옴니 채널 만들어라'

은행들이 이자수익에 과도하게 의존 내지 집착한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팬데믹 종료 국면에서 받고 있는 수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은 이전의 비판과 강도가 다르다. 비이자수익 창출도 한계라 그야말로 기존의 업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중고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국내 은행그룹의 비이자이익 원천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국내 은행그룹의 비이자이익은 총이익의 19.2%로, 글로벌 100대 금융사의 총이익 대비 비이자이익 비중인 40.8%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지주사 그룹이 아닌 은행으로 한정하면, 국내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이보다 더 낮은 14.4%에 불과하다. 이 보고서는 은행이 이자이익 중심으로 성장하면 경기에 민감한 수익구조로 인해 경기대응 정책의 기대효과가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문제는 비이자수익도 수수료이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자칫 소비자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결국 내부적으로는 매트릭스(기존 기능부서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특정한 프로젝트를 위해 서로 다른 부서의 인력이 함께 일하는 것) 형태의 영업방식을 정착시키고 옴니채널(모든 것, 모든 방식을 뜻하는 접두사 옴니와 유통경로를 뜻하는 채널의 합성어)을 노리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선 옴니 개념에 적합한 새 모델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융합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배달부터 공급망 금융까지 생소한 분야까지 '노크'

융합은 은행권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엠로와 디지털 공급망 플랫폼 구축 계약을 지난 4월 체결해 관심을 모았다. 엠로와 공급망금융 모두가 생소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우리은행과 엠로는 SCF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향에서 아이디어를 교류 중이다. (사진=우리은행)
우리은행과 엠로는 SCF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향에서 아이디어를 교류 중이다. (사진=우리은행)

공급망금융(SCF ·Supply Chain Finance)이란 원자재 조달부터 제품 생산과 유통, 최종 판매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를 최적화하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안정적이고 빠르게 운전자금을 지원한다는 개념이다. 

엠로는 공급망관리(SCM) 소프트웨어 업체다. 우리은행은 금융권 처음으로 디지털 공급망 플랫폼을 통해 기업 고객에게 최적화된 구매 업무와 전자계약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이 회사를 파트너로 점찍은 것이다. 

과거 영세한 하도급 업체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제도권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 받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나, 디지털 공급망 플랫폼을 통한 구매 거래 정보만 있으면 전용 금융상품 등을 통해 맞춤형 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자, 은행과 군소기업 모두에게 윈-윈인 셈이다.

법률, 세무, 디자인 등의 경영활동 지원이나 지배구조(ESG) 지원을 위한 탄소배출량 관리 등도 제공 가능해진다.

혁신금융서비스 특례를 활용해 배달 플랫폼 시장에 나선 경우도 있다. 신한은행은 2020년 12월 음식 주문·중개 플랫폼 사업을 하면서 연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제 특례를 받았다. 이를 통해 신한은행은 우리 동네 배달앱을 슬로건으로 내건 음식 주문·중개 플랫폼 ‘땡겨요’를 론칭했다.

땡겨요는 착한 배달 플랫폼을 표방한다. 주문 수수료는 2%대로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입점 수수료·월 이용료·광고비를 없앴다. 특히 땡겨요 관련 상품으로 배달 라이더와 입점 업체 사장 전용 대출을 내놔 본업과의 접점 개척에도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

신한은행은 5월31일 비금융 서비스 배달앱 '땡겨요'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담은 액자를 전달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공개한 '착한 리뷰송' 광고가 한 달 만에 유튜브·인스타그램에서 조회수 460만뷰를 돌파했다. (사진=신한은행)
신한은행은 5월31일 비금융 서비스 배달앱 '땡겨요'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담은 액자를 전달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공개한 '착한 리뷰송' 광고가 한 달 만에 유튜브·인스타그램에서 조회수 460만뷰를 돌파했다. (사진=신한은행)

KB국민은행은 2019년 10월 금융권 처음으로 알뜰폰 리브모바일(Liiv M)을 시작했다. 간편하고 저렴하게 금융과 통신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는 실험을 성공시킨 것이다. KB국민은행 거래 실적에 따라 통신 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100만명 가입을 기준으로 이 가입이용자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활용한 상품을 본격 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단순히 싼 알뜰폰으로 윈-윈하는 게 아니라 KB 틀 안에 알뜰폰을 매개로 새 유니버스를 이룰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개인정보 장악 우려 등 해결 과제

하나은행이 운영 중인 '라방'의 누적 이용자수가 6월2일 기준 9만9300명을 돌파했다. (사진=하나은행)
하나은행이 운영 중인 '라방'의 누적 이용자수가 6월2일 기준 9만9300명을 돌파했다. (사진=하나은행)

같은 맥락으로 하나은행은 로봇 어드바이저 하이로봇을 통해 우리 크래프트 테크놀리지스의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라이브방송(약칭 라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금융 분야 수익 창출이라는 본업과의 접목 시도를 조만간 본격화할 것이라는 시선도 벌써부터 받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7월 자체 유튜브 채널 하나TV를 통해 환전지갑 상품 관련 라방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환전지갑이란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환전 서비스로 이용자들에게 최대 90%의 환율 스프레드 혜택을 제공한다.

다른 은행들을 긴장시키는 대목은 이런 라방을 은행 자체 애플리케이션(앱)과 접목하는 수순으로 이미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은 5월부터 하나원큐 앱을 통해서도 월 2회 라방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을 필두로, 자체 플랫폼 강화를 본격화한다. 비대면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라방을 좋은 영업 창구로 활용하고, 라방이 현재 답보 상태에 빠진 은행 플랫폼 키우기의 군불 때기 연료로 쓰려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오프라인 점포를 많이 굴리는 게 부담스러운 시대에 하나은행이 라방을 통해 소비자직접판매(D2C) 전략을 꾀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다양한 노력은 모두 데이터 집중을 통한 생태계 구축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지나친 데이터 수집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은행이 비금융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불필요한 고객 정보까지 수집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금융상품에 활용하더라도 고객의 정보를 어디까지 수집하고 공개하는지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다만 은행이 변신하지 않더라도 여러 형태의 생활 서비스는 더욱 늘어날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은행이 비금융 사업으로 얻은 소비자 데이터를 금융 취약 계층의 금융 문턱을 낮추는 데 활용하는 것만 보장된다면, 현재 같은 다양한 생태계 구축이 공급할 선순환 효과를 백안시만 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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