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지출 논의 이면 '국가부채 위기'...건전성 관리 나서야
달콤한 지출 논의 이면 '국가부채 위기'...건전성 관리 나서야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1.11.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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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국채로 버티는 구조, 민간 역할 축소 부작용만↑
재정건전성 포기한 지출, 남미형 경제 악순환 위험

대선이 다가오면서 재정 지출에 대한 찬반 논의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각각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과 '소상공인 지원'을 주요 경제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9일 현재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정치권의 공약에 재원 조달 방안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무리한 재정 지출 자체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효율적인 지출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한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 '양호한 수준의 재정건전성'이란 주장에 대해선 여러 각도에서 반론을 제기한다.

우선 가장 큰 문제점은 달러·유로 등을 사용하는 기축통화국을 제외한 비기축통화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이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3월 내놓은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 간 재정여력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채무비율 수준은 OECD 전체 평균인 65.8%보다는 낮지만, 비기축통화국 평균치인 41.8%보다는 높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비율은 2019년 기준 41.9%로, OECD 비기축통화국 14개국 중 6위를 기록했다.

특히, 조세연은 보고서에서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기축통화국과는 상황이 다르므로, 전체 평균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축통화국 정부 채권과 비기축통화 채권은 수요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국의 채권은 국제 거래에 항상 이용되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수요가 있으며 외환보유액을 높이는 역할도 하지만, 비기축통화국 채권은 이런 역할을 하지 못 하므로 발행에 별도의 부담이 불가피하다.

다음으로 국가채무에 대한 기준에서 우리나라가 결코 안정적 수준이 아니라는 '기준의 착시 현상'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재정건전성 우수 일종의 착시…4대연금 등 잠재 부채 확장시 규모·증가속도 '경고등'

국가 간 재정건전성을 비교할 때 사용되는 국가채무(D1)에는 확정 부채만 포함되고 비확정 부채는 제외된다. 정부 부채 통계는 크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친 국가채무(D1)와 D1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일반정부 부채(D2), 그리고 D2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합한 공공부문 부채(D3)로 분류된다.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는 대개 D2 기준을 적용한다. 또한 OECD가 발표하는 D2 비율은 공적연금 충당부채를 제외한 수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D2 부채비율은 42.2%, OECD 국가들의 평균치는 80.9%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타 국가들과 달리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을 정부 부담으로 떠받치고 있어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민간싱크탱크 K-정책 플랫폼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부채 규모는 944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타 국가 기준으로 일반적 부채로 인식해 함께 포함한다면, 2019년말 기준 D2는 91.4%까지 올라간다고 K-정책 플랫폼은 추산했다. 

따라서 재난지원금 등 각종 현금 살포성 정책으로 적자국채까지 발행하면서 부채를 무한정 늘리는 것은 현재 재정건전성에 독이 되는 것은 물론, 부담 여력에도 큰 의문이 제기된다. 

◇ 재정 투입 효과 이전만 못 해…적자국채 이면엔 신인도 하락 등 연쇄 위험성

이른바 구축 효과도 문제다. 적자국채 발행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할 경우 구축 효과로 경기 부양 효과는 작아지고 이자 비용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사실상의 나랏빚이 늘어나면서 지급해야 할 적자국채의 이자 지급액도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자국채 이자 지급액은 8조3000억원, 올해 들어 8월까지 적자국채 이자 지급액은 4조4000억원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구축효과 가능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부담을 늘리기도 어렵고, 이 같은 정책 방향을 추진하는 것에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적자국채 발행을 감수하더라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에 즈음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사진=연합뉴스)
적자국채 발행을 감수하더라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에 즈음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잠시 소개한 조세연 보고서를 보면 파급 효과는 더 문제다. 한국을 비롯한 비기축통화국의 채무가 급증할 경우 국채 발행에 어려움만 따르는 게 아니다. 리스크프리미엄 증가와 수요 부진으로 인한 이자율 상승이 우려된다는 것. 민간 경제 참여자들의 역할만 축소되는 부작용만 부각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경제성장 여력이 더욱 줄고, 국가신인도 하락과 재정위기 등을 야기하는 연쇄 작용의 가능성도 있다. 조세연 보고서는 "기축통화국과 GDP 대비 부채비율을 비교한 후 이들 국가에 비해 낮기 때문에 재정여력이 풍부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한 결론일 뿐 아니라 (심지어) 위험한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늘어난 부채 규모 때문에 장기적 경제난국에 빠진 아르헨티나 등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향후 예상되는 재정의 중장기 핵심 리스크 요인 가능성으로 △경제위기 상시화로 인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잦은 변경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 급증 △복지포퓰리즘에 따른 재정정책의 교란 △큰 정부 비효율성에 따른 재원의 낭비 등의 악순환 우려를 꼽았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재정규모와 향후 재정수요를 감안할 때 현실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채무수준의 사전적 (기준) 마련이 어렵다"면서 기준이 명확한 지출과 편성을 강조했다. 예산 절감을 위해 도입된 예타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정부 재정의 투입 근거와 규모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재정준칙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올해 2월까지 예타 면제 규모가 97조원에 달해 이미 지난 두 정권의 면제 규모를 상회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출신의 정무섭 동아대 무역학과 교수는 예타의 실효적 운영을 통해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절감해야 한다고 짚는다.

작년 10월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하는 국가재정법안을 제출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 통합재정수지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이 한국형 재정준칙을 담았고, 적용 시기는 2025년부터로 제시했지만 아직 통과가 되지 못 하고 국회 계류 중이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는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재정준칙의 빠른 통과를 요청했다. 재정준칙의 적용을 통해 방만한 재정지출의 유혹을 떨치려면, 독립적인 재정준칙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도 뒤따른다.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7월 '위기의 한국 경제'라는 책을 발간하고 "(가칭) 재정준칙위원회에 금통위와 같은 권한을 주고, 여야에 위원 선출권 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준칙 도입 등 남미형 장기 불황 국가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마지막 비상구를 찾자는 논의가 실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