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9] "빛 잘 들고 방음 잘 되는 내 공간 어디 없나요?"
[아듀! 2019] "빛 잘 들고 방음 잘 되는 내 공간 어디 없나요?"
  • 이소현 기자
  • 승인 2019.12.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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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직장인도 수천만원 보증금으로 '간신히 원룸'
수입의 20% 정도 비용으로 좀 더 넓은 집 살고 싶어
정부 지원 정책 많지만 체감 어려워…홍보 강화돼야
황OO 씨가 거주 중인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원룸. (사진=황OO)
황OO 씨가 거주 중인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원룸. (사진=황OO)

정부가 청년층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대출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를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 많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홀로서기에 도전한 청춘들은 가장 먼저 '집'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다. 거대 도시 서울의 한 귀퉁이 단칸방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청춘들과 함께 정부의 청년 주거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봤다.<편집자주>

국토교통부가 올해 5월 발표한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청년 가구 75.9%가 임차 가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 임차 가구 RIR(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20.1%로 일반가구 15.5%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년 가구 중 9.4%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환경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은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으로 전세자금 대출 지원(32.2%)을 꼽았으며, 주택 구입자금 대출지원(24.3%)과 월세 보조금 지원(16.4%)에 대한 요구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신아일보가 인터뷰한 서울 청년들은 수천만원 보증금으로 간신히 원룸 하나 구하는 게 보통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알뜰하게 모은 아르바이트 월급 70만원은 40% 이상이 주거비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임대료에 전기·가스비 등을 포함한 주거비가 수입의 20% 정도만 돼도 그럭저럭 살만할 것 같은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빛 잘 들고, 방음 잘 되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넓은 내 공간. 서울 단칸방 살이 청춘들의 작은 소망이다. 이들은 정부의 다양한 주거정책이 청년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오길 바랐다.

Q 한 달 주거비로 평균 얼마를 쓰나?

황OO 씨(27·남·대학생·미아동 원룸) "대학생이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고, 월수입은 70만원 정도에요. 더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전세대출을 받아 원룸에 들어왔어요. 7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고, 청년전월세대출을 받아서 매월 이자 15만원을 지출하고, 관리비 4만원과 전기세 1만원, 겨울이라 난방비는 10만원 정도 들어가요"

송OO 씨(24·여·직장인·상도동 원룸)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는 52만원이에요. 수도세는 월세에 포함이고, 동절기 기준 난방비 약 3만원에 전기료 2만원 정도 나오네요"

김OO 씨(25·여·취업준비생·동교동 원룸) "일을 막 그만뒀는데, 9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고, 월수입은 200만원 정도였어요. 전기와 수도, 가스 다 포함하면 한 달에 8만원 정도 관리비로 쓰는 거 같아요. 생활비까지 하면 지출비는 대략 50만원 정도 되네요. 근데 생활비는 워낙 그달 약속이나 업무에 따라 달라져서 100만원까지도 쓰는 거 같아요"

송OO 씨가 거주 중인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원룸. (사진=송OO)
송OO 씨가 거주 중인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원룸. (사진=송OO)

Q 수입 대비 주거비 지출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나?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주거비 수준은?

"부담이 되죠. 지금 수입에서 42% 정도가 주거비로 나가고 있어요. 주거비는 수입의 15~20%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대출 제도를 잘 활용하면서 월급을 받는 처지라면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 용돈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라면 제 경험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학생이나 무직자를 대상으로 전기세나 가스비 등을 지원해주는 등 실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월수입의 22% 정도가 고정 월세로 나가는데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월세가 급여의 15~18% 정도로 지출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에요. 자취하다 보면 고정적인 지출이 있어요. 예를 들어 생활용품이 떨어졌다든가, 갑자기 집에 어떤 게 고장이 났다든가 하는 사소하고 작은 지출이 모여 나중에 보면 굉장히 큰 지출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월세를 지불하는 만큼 상응하는 조건의 좋은 집을 얻는다면 월세 지출이 아깝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에서는 그런 집을 찾기가 힘들죠. 새집이면 좁아터졌고, 넓은 집이면 곰팡이가 있거나 바퀴벌레가 출몰해요. 욕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주거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에서 아파트 하나를 23칸으로 나눠서 월세를 약 50만원 정도 받는다는 기사를 봤는데, 비단 그들만의 일이 아닐 거로 생각해서 착잡해진 적도 더러 있어요"

"생활비를 다 합치면 25% 정도 되고, 불만족이에요. 지금은 완전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전셋집에 살고 있지만, 만약 주거비 지출을 오롯이 저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한 달에 30만원 정도였으면 좋겠어요"

Q 현재 거주 환경에서 만족하는 점은?

"우선, 혼자 생활하다 보니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죠. 원룸은 풀옵션인 경우가 많아서 생활가전 따위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생활하기 편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사는 원룸이 방한이 잘 돼서 난방비가 많이 안 들어요"

"상도동이 주거 지역이라 동네가 비교적 깨끗하고 조용해요. 1인 가구가 밀집된 지역이라 저렴한 가격에 부담 없이 혼밥(혼자 식사)할 수 있는 가게가 많아서 좋아요. 개인적인 장점으로는 용산역 주변 월세가 높은데 상도동까지 살짝만 내려오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용산 근처에 살 수 있다는 점이 있어요"

"홍대입구역 근처에 살아서 쇼핑이나 편의시설이 아주 잘 돼 있어요. 집 앞 3분 거리에 백화점 등 생활 인프라가 조성돼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어요"

Q 현재 거주 환경에서 불편한 점은?

"원룸은 아무래도 방음이 잘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요. 가장 취약한 곳은 화장실인데 무슨 대화를 하는지 다 들릴 정도예요. 지금 사는 집은 내부방음은 잘 돼서 층간 소음은 괜찮은데, 외부방음이 잘 안 돼서 옆 건물에서 말하는 소리가 다 들려요. 전에 살던 원룸은 내부방음이 민망할 정도로 되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자취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원룸 대부분은 방음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원룸이라는 공간 자체가 좁기 때문에 생활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불편하죠.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옮겨 다닌 4개 원룸 중에서 가장 비싸고 좁은 집이에요. 교통도 회사와 가깝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불편한 편이에요. 1호선과 9호선 환승역인 노량진과 가까워서 강남이나 여의도는 비교적 빨리 갈 수 있는데, 그 외 지역은 같은 서울인데도 50분 정도 걸려요"

"지금 사는 집이 창문을 열면 다른 주택이 바로 붙어있어서 하늘을 못 본다는 점이 아쉬워요. 채광이 좋지 못해서 방안에서 꿉꿉한 냄새가 자주 나기 때문에 환기를 필수로 해야 해요. 추운 겨울에도 1시간씩 환기는 기본이랍니다"

 

김OO 씨가 거주 중인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원룸. (사진=김OO)
김OO 씨가 거주 중인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원룸. (사진=김OO)

Q 이사를 한다면 어떤 지역의 어떤 주택으로 가고 싶은가?

"앞으로 하려는 직업 특성상 서울 안에서 이사하고 싶어요. 옮긴다면 개인적인 공간이 더 많이 확보되는 일반주택이나 원룸 형태더라도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 싶네요. 사실 서울의 월세나 전세 대부분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어차피 부담되는 주거비라면 좀 더 넓고 사생활이 존중될 수 있는 공간으로 가는 게 목표에요"

"다음 집은 전세대출을 받아서 이사할 계획이에요. 일단 무조건 원룸은 피하고 싶어요. 투룸이나 쓰리룸이나 복층으로 가고 싶어요. 복층은 한 번 살아본 적이 있는데 그래도 생활공간이 많이 확보돼요. 출가한 지 5년째라 짐이 불고 불어서 원룸으로는 버거워요. 세탁기며 싱크대며 화장실까지 모두 한 방에 모여있는 원룸에 살다 보니 짐 무더기 속에서 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당산역 근처로 이사를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서울에서 교통편이 좋은 위치고, 2호선이 가까워서요. 그리고 원룸보다는 조금 더 넓은 1.5룸 정도 되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이왕이면 부엌이 분리된 집으로요. 자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짐도 많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집에서 두 끼 정도는 해 먹어야 하는데, 부엌이랑 방이 한 공간에 있다 보면 냄새도 잘 안 빠지고 해서요. 특히, 이번에 이사할 때는 꼭 채광이 잘 되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Q 집과 관련해 정부에 정책적으로 바라는 점은?

"저 같은 경우에는 나이도 있고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서 대출을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대학생 또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출 상품이 많았어요. 저도 작년까지만 해도 월세 50만원을 내가며 큰 부담을 안고 살았는데, 이제는 14만~15만원만 지출하니까 부담이 적어요. 그런데 이런 상품에 대한 홍보가 너무 부족한 게 문제에요. 제가 지인들에게 이런 상품을 추천할 때마다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에요. 심지어 은행 7곳을 돌아다녔는데 은행원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들른 대학교 근처 은행에서 이 상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겨우겨우 집을 구할 수 있었어요. 정부가 이런 정책을 더 많이 홍보하고 업무 담당자에 대해 교육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소기업을 상대로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기업 규모가 아니라 연봉이나 소득 기준으로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급여는 중소기업만큼 받는데 회사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전세금 대출을 못 받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행복주택 공급량도 조금만 늘려줬으면 해요.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거든요"

"아무래도 정확한 정보전달이 안 돼서 어디서 어떻게 지원받는지도 모르고 어떠한 지원 방법이 있는지 모르는 부분이 많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라든지 청년층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를 활용해서 널리 알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초년생들 또는 자취가 처음인 친구들에게 경제적으로 지원이 많이 필요해요"

[신아일보] 이소현 기자

sohyu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