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일까지 해놓으세요"…코레일, 카톡 갑질 여전
[단독] "내일까지 해놓으세요"…코레일, 카톡 갑질 여전
  • 김재환 기자
  • 승인 2019.0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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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文 정부 공약은 공염불
자료 남기지 않으려 심야 전화 지시까지

"저녁에 전화나 카톡으로 다음 날 오전까지 해놓으라면서 퇴근해요. 자기들끼리는 업무시간 외 카톡 갑질 금지한다면서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한 제보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선공약으로 금지하겠다던 '퇴근 후 카톡 지옥'을 공공기관이 조장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오전까지 '철저하게'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식의 발주처 갑질이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피로사회에서 탈출한다던 정부 공언이 무색하다.

18일 본지 취재 결과, 철도 운영 기관인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용역업체 대상으로 퇴근 후 업무 지시 등의 갑질을 일삼아 온 것으로 확인됐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자 고용노동부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정책에 배치되는 일이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코레일이 발주한 용역을 수행하는 다수 업체에서 받은 제보에 따르면, 업무 지시는 주로 휴대전화 앱 카카오톡과 전화로 밤 9시가 넘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특히, 코레일이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직접 지시하지 않고, 민간 감리 업체 등을 중간 매개로 삼거나 전화 통화로 대략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한 후 카톡 단체방에 자료만 던져놓는다는 증언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실제 본지가 입수한 단체 카톡방 대화내용을 보면 한글파일을 PDF파일로 변환해달라거나 특정 문구를 수정하라는 등의 간단한 요구부터 40~50여분의 작업이 필요한 문서작성까지 다양한 지시가 있었다.

심야 시간에도 10명 이상의 인원이 참가한 단체방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메시지를 확인했을 정도로 퇴근 후 업무는 계속됐다. 

한 제보자는 "정부 기조에 맞춰서 감독관(코레일 직원)이 아닌 일반 감독(감리 용역업체) 등을 끼고 지시하는 식으로 문화가 바뀌었다”며 "직접 가해자는 아니지만 간접 가해자가 되기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시 동구 코레일 사옥.(사진=신아일보DB)
대전시 동구 코레일 사옥.(사진=신아일보DB)

일각에서는 퇴근 후 업무지시뿐만 아니라 대리 주유나 세차, 인건비 전가 등의 과거 불합리한 관행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일부 고령 임원들이 몰상식한 구태를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업계에서는 초과근무 12시간 포함 주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기준법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간 조합원 610명을 대상으로 한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3%인 386명이 "주 52시간 근무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원인으로는 응답자의 12.7%가 '발주처 업무 탓'이라고 밝혔다. 이에 건설기업노조는 발주처의 잔업 지시 문화가 근절되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관리감독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퇴근 후 업무지시가 노동시간 단축 및 일-가정 양립 정책 측면에서 근절해야 할 과제라면서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퇴근 후 업무지시를) 줄여나가기 위해 홍보성 캠페인과 (공공기관 대상) 공문 등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관련 법령이 없는 상태에서 제재하기 위한 근거가 마땅치 않아 계도 차원에서 접근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수년 전부터 카톡에 침해당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퇴근 후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노력이 일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지난 2017년8월 퇴근 후 직·간접적인 업무지시를 금지하고, 정당한 업무의 경우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 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태다. 

이용호 의원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에도 모바일 메신저가 근로자를 직장에 묶어두는 족쇄가 돼 워라밸 문화 정착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코레일은 이번 문제와 관련해 근무 시간 후 카톡 업무 지시가 잘못 된 행위임을 인정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전에 공식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밝혔다.

jej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