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선 정비사업] ①불 당긴 '현대건설 7천만원'
[갈림길 선 정비사업] ①불 당긴 '현대건설 7천만원'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7.10.27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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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서 대놓고 '현금 매수'
잠 자던 정부 마저 깨운 건설종가의 통큰 야욕

서울시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전경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네모안).(사진=신아일보DB)

서울시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전경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네모안).(사진=신아일보DB)

국내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수주전을 펼치고 있는 건설사들의 모습은 마치 불 속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을 떠올리게 한다. 주택 재정비 시장의 과당경쟁과 비리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양상이 극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급기야 정부는 제도 정비의 칼날을 꺼내들었고,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클린수주' 이슈가 불거졌다. 썩은 물 속 물고기는 결국 죽는 법. 혼탁해 질 대로 혼탁해진 주택 재정비 시장을 썩은 물로 방치할 지, 맑은 물로 정화할 지를 두고 정부와 업계, 조합이 갈림길에 섰다. <편집자주>

고질병으로 여겨져 왔던 주택재정비 시장의 과당경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것은 다름 아닌 건설종가 '현대건설'이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불리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수주전에서 현대건설이 꺼내든 7000만원 카드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사업 수주에 급급했던 건설종가의 야욕은 결국 잠 자던 정부를 흔들어 깨웠다.

지난달 27일 현대건설은 GS건설을 제치고 공사비 2조6000억원, 총 사업 규모 10조원에 육박하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사 및 공동시행사업자로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조합원당 이사비 7000만원 무상지원 공약'을 꼽는다. 한 때는 오랜시간 공들여 온 GS건설의 우세가 점쳐지기도 했지만, 이사비 카드는 이 같은 판도를 뒤엎은 핵심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이사비 문제가 법적인 논란을 불러오자 조합측에서는 이사비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현대건설이 어떤식으로든 조합원 모두의 이익으로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데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A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사실상 현대건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사비 7000만원 공약이 가장 컸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에 현대건설과 GS건설간 극으로 치닫았던 상호비방전을 두고도 국내 대표건설사들이 펼치는 경쟁이라고 보기에는 수준 이하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동안 수면 아래서 암암리에 이뤄졌던 재건축 시장의 혼탁·과당경쟁이 온 국민에게 생중계 되다시피 하면서 세상 밖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수주전에서 현대건설측이 배포한 GS건설 비방 홍보물.(사진=신아일보DB)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수주전에서 현대건설측이 배포한 GS건설 비방 홍보물.(사진=신아일보DB)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수주전에서 GS건설측이 배포한 현대건설 비방 홍보물.(사진=신아일보DB)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수주전에서 GS건설측이 배포한 현대건설 비방 홍보물.(사진=신아일보DB)

어찌됐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반포주공1단지 수주전은 현대건설이 GS건설을 꺾고 건설종가의 자존심을 지켜낸 것으로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번 수주경쟁이 남긴 후폭풍은 적잖다.

우선, 그 동안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던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사 선정이 있은 다음날 현대건설과 GS건설, 롯데건설 등 8개 건설사 관계자들을 불러 재건축 단지 시공사 선정 경쟁이 과열되면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위배될 수 있는 행위가 다수 발생한 것을 두고 엄중 경고 했다.

또, 논란이 됐던 과도한 이사비와 재건축 부담금 지원, 금품·향응제공 등의 행위는 도시정비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국토부는 앞으로 시공사 선정기준 등을 보완해 위법소지가 있는 경쟁에 대해서는 입찰자격 박탈 등 처벌을 강화할 계획이다.

시민단체에서도 반포주공1단지에서 일었던 이사비 논란을 강하게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사 선정 하루 전 성명을 통해 "현대건설의 7000만원 무상 이사비 지원 및 이주비 5억원 무이자 대출, 롯데건설의 579억원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대납 등 강남재건축 사업 수주를 위한 건설사들의 파격적인 제안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사업수주를 위한 불법적 뇌물제공 행위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감도.(자료=현대건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감도.(자료=현대건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현대건설은 이사비 문제는 정부와 서울시에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면 그에 따를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사비 제공 자체가 위법하다는 것은 아니고, 금액이 과도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며 "정부와 서울시에서 강남의 지역적 상황을 잘 검토해서 적정 수준을 정해 주면 그에 맞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