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방향 잃은 'SH 장기전세'
[기자수첩] 방향 잃은 'SH 장기전세'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6.10.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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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KTX를 타고 가든 뛰어서 가든 결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이 속담의 목적지로 등장하는 '서울'의 주택 정책은 형식에만 얽매인 나머지 목표한 바가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가에는 무감각한 모습이다.

단적인 예가 서울시의 대표적 서민임대주택인 '장기전세'다.

장기전세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안정적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요즘 같은 고(高)전셋가 시대에는 서민들에게 더 없이 매력적인 주거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특별공급'이란 방법으로 철거민 이주 대책으로도 활용되면서 시 입장에선 상당히 쓸모 있는 제도가 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전세 특별공급 입주자 모집 과정을 보면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의심스럽다. 철거주택 소유자에게 주어지는 특별공급 입주권이 시장에서 편법적 방법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철거주택과 아무 관계 없던 일반인이라도 철거주택을 구매하기만 하면 소유기간에 상관없이 장기전세 혜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철거민 거주안정이란 취지는 물론, 서민 주거안정이란 취지에도 맞지 않는 그야말로 눈 먼 전셋집이 되버리는 셈이다.

인터넷 포털에는 이를 노린 중개업자와 장기전세 입주 희망자들의 거래가 나 보란듯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SH와 제도를 주관하고 있는 서울시 모두 천하태평이란 것이다.

실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해진 규정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전부다.

자신들은 서울행 기차를 태워 보낼 뿐, 그 기차가 대구로 가든 부산으로 가든 상관 없다는 식이다.

목적지를 상실한 채 엉뚱한 곳에 시민들의 세금만 낭비하고 있는 제도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서울에서 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전셋집 하나 갖는다는 것. 소소한 행복이고 바람일 수 있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서울의 주택정책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그 벽을 허물기는 커녕 오히려 벽돌 한 장을 더 올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