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둔청년 해결, 상담이 능사는 아니다
[기자수첩] 은둔청년 해결, 상담이 능사는 아니다
  • 이인아 기자
  • 승인 2024.01.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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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가두는 길을 선택한 고립·은둔 청년 10명 중 8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27%는 행동에 옮기기까지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지난해 3월 보건복지부의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모형 개발 연구'를 위해 진행한 온라인 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조사에는 전국 19~39세 대면 접촉을 꺼리는 청년 2만1360명이 최종 참여했다.

자취를 감춰버리고 싶은 이유로 취업 어려움(24.1%), 대인관계(23.5%)를 꼽았다. 조사에는 2만1000명 정도가 참여했으나 보사연은 실제 고립·은둔 청년이 54만 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다는 청년이 늘자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대면 ‘원스톱 도움 창구’를 마련하고, 보건복지부 소관 공공사이트에는 자가진단시스템을 마련해 고립·은둔 위기 정도를 진단할 수 있도록 한다. '129 보건복지상담센터'에 청년 항목을 신설해 도움을 요청하도록 한다. 이렇게 발굴된 고립·은둔청년을 새로 지은 ‘청년미래센터’를 통해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중앙정부가 고립·은둔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인 건 처음이다. 발 빠르게 대처하는 자세는 환영하나 내놓은 대책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이 ‘요청으로 이뤄진 상담’을 기반으로 한다. 상담이라는 게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나 오히려 반항심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일단 상담은 대체로 좋지 않은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사용되곤 한다. 누군가가 “얘기 좀 하자”라고 할 때 기대감이 생기기보다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걱정이 앞섰던 일을 겪어봤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불안감이다.

상담은 문제 해결을 위한 초기 단계로 이를 요청하라는 것은 곧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과 다름없다. 자존심과 연결돼 웬만한 용기를 가지지 않고서야 치부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신경정신과를 기피 하는 심정과 비슷한 맥락이다.

더구나 상대적 박탈감에 있는 고립·은둔청년의 경우 자신의 내면을 발설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따라서 상담을 요청하라고 홍보하거나 상담 대상자로 지목하는 것은 자칫 “내가 문제의 근원지”라는 식의 엉뚱한 해석을 낳아 더 숨어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이에 유의해야 한다.

현실 삶에 최고인 자는 없다. 책임자가 최고가 아니라 맡은 일이 무거울 뿐이다. 각자 소명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욕망은 어떤 일이 있어도 충족되지 못한다. 청년을 어르고 달래기보다 이런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케어가 아닌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사람과의 접촉을 활성화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사실 청년이 아니고서도 고립·은둔 직장인도 많다. 간신히 생계비만 벌고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부류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정부는 지속적으로 모니터해 나가야 한다.

[신아일보] 이인아 기자

inahlee@shinailbo.co.kr